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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어하우스(Warehouse) 역사와 데드스톡 블루: 1인치 8땀까지 집착한 시오타니 형제의 복각

    웨어하우스(Warehouse) 역사와 데드스톡 블루: 1인치 8땀까지 집착한 시오타니 형제의 복각

    웨어하우스(Warehouse)의 탄생: 21세 쌍둥이 시오타니 형제가 내건 ‘충실한 복원’

    1990년대 중반, 일본 패션계는 유례없는 빈티지 데님 열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1940~50년대 리바이스 중고 바지 한 벌이 수십만 엔을 호가하던 시절이었죠. 스튜디오 다티잔, 드님, 에비스, 풀카운트가 차례로 등장하며 이른바 ‘오사카 파이브(Osaka Five)’의 전설이 완성되어 가던 1995년, 가장 늦게 합류한 막내 브랜드가 바로 ‘웨어하우스(Warehouse & Co.)’였습니다.

    브랜드를 세운 주인공은 1973년생 쌍둥이 형제인 시오타니 켄이치(Kenichi Shiotani)와 시오타니 코지(Koji Shiotani)였습니다. 창업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불과 21세였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오사카의 아메리카무라 빈티지 숍을 드나들며 헌 옷에 푹 빠져 살던 형제는, 에비스(Evisu)의 창립자 야마네 히데히코 밑에서 일하며 청바지 제작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꿈꾼 옷은 에비스처럼 독창적인 페인팅을 뽐내는 개성파 데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하나, 1940~50년대 전성기 미국 워크웨어의 오리지널리티로 향해 있었습니다.

    “우리의 디자인을 더하지 않는다. 빈티지 원형 그대로를 완전무결하게 복원한다.”

    형제는 ‘진짜 빈티지 의류의 충실한 복원(The faithful reproduction of authentic vintage garments)’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웨어하우스를 출발시켰습니다. 오사카 파이브 중 가장 늦게 출발한 만큼, 앞선 선배 브랜드들이 미처 닿지 못한 마이크로 단위의 정밀한 고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실 한 올과 바느질 땀수의 집착: 면사(Cotton Thread)와 1인치 8땀의 미학

    청바지를 복각한다고 하면 대부분 원단의 두께(온스)나 셀비지의 붉은 선에 먼저 주목합니다. 하지만 시오타니 형제의 집착은 바지를 꿰매는 ‘실’에서부터 시작되었죠.

    현대 의류 공장에서는 질기고 잘 끊어지지 않는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코아사(Core thread)를 봉제사로 씁니다. 작업 효율이 높고 불량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웨어하우스는 작업자의 효율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100% 면사(Cotton Thread)만을 고집했습니다. 면사는 잘 끊어지고 재봉틀 속도도 빠르게 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면사였을까요? 답은 ‘경년변화(Aging)’에 있습니다.

    데님이 세월을 만나 낡아가고 물이 빠질 때, 폴리에스터 실은 색이 바라지 않고 반짝거리며 겉돕니다. 반면 100% 천연 면사는 인디고 원단과 함께 수축하고, 자외선과 땀에 의해 서서히 산화되며 원단과 같은 속도로 바래집니다. 시간이 흘렀을 때 실밥마저도 자연스럽게 낡아 닳아 없어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려면 면사 봉제 외에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시오타니 형제는 오리지널 빈티지 리바이스를 돋보기와 마이크로미터로 들여다보며 실의 굵기(번수)와 바느질 땀수(Stitch per inch)를 해부했습니다. 허리 밴드, 코인 포켓, 밑단 등 부위마다 사용된 1인치당 땀수가 6땀인지, 8땀인지 철저히 계산했고, 윗실과 밑실의 장력 차이까지 빈티지 봉제 방식 그대로 맞췄습니다. 전설적인 구형 체인스티치 봉제기 ‘유니온 스페셜 43200G’로 박음질한 밑단이 세탁 후 빨랫줄처럼 똬리를 틀며 말려 올라가는 ‘로핑 이펙트(Roping effect)’는 이러한 미시적인 집착 덕분에 탄생했습니다.

    ▲ 공장에 설치된 유니온 스페셜(Union Special) 산업용 봉제기
    ▲ 공장에 설치된 유니온 스페셜(Union Special) 산업용 봉제기
    사진: Тиверополник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전설적인 배너 데님의 탄생: 1930년대 빈티지 원단을 해체하고 분석하다

    웨어하우스의 대표 모델인 ‘Lot 1001XX’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원단이 있습니다. 바로 ‘배너 데님(Banner Denim)’입니다.

    형제는 1930년대 리바이스 매장에서 홍보용으로 걸어두었던 귀중한 빈티지 데님 배너를 손에 넣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액자에 넣어 보관할 역사적 유물이었지만, 시오타니 형제는 이 진귀한 배너를 가차 없이 분해했습니다. 경사와 위사를 한 올씩 풀어내 실의 꼬임 횟수(연사), 면화 섬유의 길이, 불규칙한 요철(슬러브)의 간격을 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하기 위해서였죠.

    분석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당시 미국 데님은 단일 품종의 면화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웨어하우스는 그 당시 텍스처를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미국 텍사스, 애리조나, 테네시에서 수확한 세 가지 면화를 최적의 비율로 블렌딩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남아 있던 구형 ‘도요다 G3’ 셔틀 직기를 찾아내 느린 속도로 덜컹거리며 원단을 짰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13.5온스의 배너 데님은 빳빳하고 두껍기만 한 요즘의 생지 데님과는 차원이 다른 감촉을 선사합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살아있고, 손으로 만졌을 때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지죠. 입으면 입을수록 가로세로로 불규칙하게 하얀 실이 드러나는 페이딩은, 빈티지 청바지 애호가들이 왜 웨어하우스를 두고 ‘궁극의 복각’이라 부르는지 여실히 증명합니다.

    ▲ 전시된 도요다 G형 무정지 셔틀 자동직기 실물
    ▲ 전시된 도요다 G형 무정지 셔틀 자동직기 실물
    사진: Morio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데드스톡 블루(Deadstock Blue): 1947년 황금기 501을 되살린 장인의 경지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던 웨어하우스는 데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이름하여 ‘데드스톡 블루(Deadstock Blue, DSB)’ 시리즈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시오타니 형제가 수십 년 전 미국 빈티지 딜러의 낡은 창고(Warehouse)에서 처음 마주했던 감동이었습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운 고스트 타운 잡화점 구석, 수십 년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던 미착용 데드스톡(Deadstock) 청바지. 방금 공장에서 나온 생지의 쨍한 남색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며 공기와 닿아 은은하게 산화된 특유의 탁하고 깊은 청록빛 인디고 블루였습니다.

    형제는 25년간 축적된 방적, 염색, 봉제 기술을 총동원해 이 ‘시간이 빚어낸 블루’를 복원했습니다. 7.5번수의 경사와 위사, 은은하게 바랜 핑크 셀비지 라인, 방적 당시의 불순물까지 계산해 넣은 실, 1940년대 특유의 철제 태크 버튼과 산화된 구리 리벳까지 단 하나의 타협도 없었습니다.

    특히 데드스톡 블루 라인의 정점으로 꼽히는 ‘1947 모델(Lot 1001XX / Lot 1000XX)’은 제2차 세계대전의 물자 통제가 끝나고 청바지가 작업복에서 일상 패션으로 승화되던 황금기의 501XX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되살려냈습니다. 밑위가 깊고 무릎부터 밑단까지 유려하게 떨어지는 클래식 스트레이트 실루엣은 입는 이로 하여금 1947년의 샌프란시스코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패션을 넘어 박물관 아카이브로: 웨어하우스가 증명한 데님의 본질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요즘 세상에 스판덱스 섞인 편한 바지가 널렸는데, 왜 굳이 80년 전 투박한 바느질과 줄어드는 면사를 고집합니까?”

    웨어하우스에게 청바지는 단순한 계절 유행 상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산업 공예품이자, 사라져 가는 과거 기술의 기록물입니다. 오죽하면 시오타니 형제는 당시 공장 노동자가 바느질을 하다 삐뚤빼뚤 실수한 땀수나 주머니 안쪽의 비대칭 봉제선까지도 원작의 일부로 보고 그대로 재현할 정도였죠.

    이들의 집요한 광기는 청바지를 패션 소모품의 영역에서 ‘박물관 소장품(Museum Piece)’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청바지 문화를 바다 건너 일본 오사카의 작은 브랜드가 가장 순수하고 깊이 있게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역설적이면서도 낭만적입니다.

    유행을 좇느라 피로해진 오늘날, 1인치에 8땀을 정성스레 박아 넣던 장인들의 고집이 담긴 청바지 한 벌을 입어보는 건 어떨까요? 매일 입고 물을 빼며 나만의 시간을 원단 위에 새겨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웨어하우스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데님의 진짜 매력일 것입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BEAMS PLUS 공식 기획 인터뷰, 「PHILOSOPHY OF BEAMS PLUS vol.13: Kenichi & Koji Shiotani from WAREHOUSE」, 2019.
    • Heddels Heritage Archive, 「Warehouse & Co. – Behind the Osaka Five Denim Powerhouse」, 2020.
    • Lightning Magazine (エイ出版社), 『Vintage Denim Complete Bible & The Archive of Warehouse』 아카이브 북 컬렉션.
    • WAREHOUSE & CO. 공식 아카이브 카탈로그 및 Deadstock Blue(DSB) 기술 백서.
  • 우라하라(Ura-Harajuku) 아카이브 패션의 역사: 거대 자본이 삼킨 골목과 90년대 빈티지 열풍

    우라하라(Ura-Harajuku) 아카이브 패션의 역사: 거대 자본이 삼킨 골목과 90년대 빈티지 열풍

    옷장에 아끼는 빈티지 티셔츠나 오래된 스니커즈 한 켤레쯤 있으신가요? 요즘 글로벌 패션 플랫폼이나 빈티지 편집숍을 둘러보다 보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을 자주 마주칩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매된 베이프(A Bathing Ape)의 초기 카모 후디나 언더커버(Undercover)의 90년대 티셔츠 한 장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광경이죠.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쿄 하라주쿠의 좁은 뒷골목 단칸 가게에서 몇천 엔에 팔리던 옷들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스트리트웨어의 전설을 썼던 우라하라(裏原宿, Ura-Harajuku)는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 뜨거웠던 열기는 왜 식어버렸고, 골목 매장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는 왜 다시 그 시절의 아카이브에 열광하는 걸까요? 그 숨은 비하인드를 조곤조곤 풀어보겠습니다.

    1. 골목의 열기가 식어가던 순간: 2000년대 후반의 변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라하라는 매주 주말마다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던 곳이었습니다. 번듯한 간판도 없는 작은 편집숍 ‘노웨어(NOWHERE)’나 ‘에이프(Ape)’ 매장 앞에는 신제품 발매 전날 밤부터 수백 명의 젊은이가 골목길 바닥에 줄을 서서 밤을 지새웠죠. 잡지에 실린 작은 사진 한 컷,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소식을 좇아 모여든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골목의 낭만에도 서서히 균열이 찾아왔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브랜드 자체의 과도한 확장이었습니다. 우라하라 특유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소량으로 구해 입는 희소성’에 있었는데,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매장이 전국 단위로 늘어나고 제품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골목 특유의 비밀스러운 공기가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희소성이 희석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유행에 민감한 거리의 청년들이었죠.

    시기 우라하라 문화의 주요 변화 흐름
    1990년대 중반 노웨어 오픈, 잡지 기반의 팬덤 형성 및 소량 생산 고수
    2000년대 초반 미국 힙합 씬 유입, 글로벌 셀럽 착용으로 전 세계적 붐
    2000년대 후반 생산량 급증, 패스트패션 유입 및 원조 골목 매장들의 폐점
    2010년대 이후 온라인 플랫폼(Grailed 등) 중심의 아카이브 재조명 및 복각 열풍
    ▲ 잡지 화보에서 아나킥 어드저스트먼트 의류를 착용한 후지와라 히로시.
    ▲ 잡지 화보에서 아나킥 어드저스트먼트 의류를 착용한 후지와라 히로시.
    사진: Vast Ozone Studio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2. 거대 자본의 공습과 우라하라의 작별

    2008년과 2009년, 하라주쿠 메이지 거리에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H&M과 포에버21(Forever 21) 같은 글로벌 패스트패션 공룡들이 거대한 매장을 잇달아 오픈한 것입니다. 수만 원대에 트렌디한 옷을 매주 쏟아내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공세 속에서, 수십만 원대의 인디 스트리트웨어를 고집하던 골목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까지 겹쳤습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소규모 독립 편집숍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그 빈자리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기업형 매장들이 채웠습니다. 우라하라의 상징이었던 브랜드들도 독립적인 경영을 이어가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2011년, 니고(NIGO)는 베이프의 운영사 노웨어(Nowhere Co., Ltd.) 지분 대부분을 홍콩의 거대 패션 유통 기업 I.T 그룹에 매각하게 됩니다. 골목길의 순수한 DIY 정신으로 시작했던 우라하라 1세대가 거대 글로벌 자본의 품에 안기며 사실상 한 시대의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우라하라의 시작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던 순수한 놀이였습니다.”
    — 당시 우라하라 씬을 회고하는 패션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고(NIGO).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고(NIGO).
    사진: Sry85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3. 온라인에서 다시 피어난 ‘아카이브 패션’

    골목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유산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부활했습니다. 바로 201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이었습니다. 미국의 그레일드(Grailed) 같은 전문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의류들이 ‘아카이브 패션(Archive Fashion)’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열풍을 주도한 주역들이 당시 우라하라를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생 소비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거 일본 패션 잡지인 『보물섬(타카라지마)』이나 『아사얀(ASAYAN)』의 스캔본을 접한 이들은, 지금의 찍어내듯 정형화된 스트리트웨어와는 전혀 다른 90년대 도쿄 골목의 밀도 높은 디자인에 매료되었습니다.

    ▲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입구에 오가는 인파의 모습.
    ▲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입구에 오가는 인파의 모습.
    사진: japanvlogjp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4. 수천만 원에 팔리는 90년대 티셔츠의 비밀

    그렇다면 왜 전 세계 컬렉터들은 30년 된 헌 옷에 수백, 수천만 원을 아낌없이 지불할까요? 단순히 ‘오래된 빈티지’라서가 아닙니다.

    첫째, 타협 없는 만듦새입니다.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가 이끌던 90년대 언더커버의 제품들은 펑크 록 정신을 바탕으로 원단을 일일이 손으로 찢고 다시 꿰매는 해체주의적 공정을 거쳤습니다. 대량생산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오트 쿠튀르적 디테일이 살아있었죠. 둘째, 대체 불가능한 ‘원형(Originality)’의 가치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이 선보이는 수많은 스트리트 협업의 뿌리가 바로 당시 우라하라에 있습니다. 컬렉터들에게 90년대 초판 제품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현대 남성복 역사의 중요한 ‘문화재’로 인식되는 셈입니다.

    5. 우리는 왜 30년 전 도쿄 골목길을 다시 찾는가?

    오늘날의 패션은 스마트폰 화면 터치 몇 번으로 전 세계 신상품을 다음 날 집 앞 배송으로 받아보는 초연결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발매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옷을 쉴 새 없이 추천하죠.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잡지 구석의 작은 주소를 보고 지도를 뒤져 찾아가던 설렘, 컴컴한 매장 문을 열 때의 긴장감, 그리고 같은 음악과 문화를 공유하던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며 줄을 서던 그 시절의 공기 말입니다.

    지금 불고 있는 복각 열풍과 아카이브 수집 열기는 어쩌면 모든 것이 빠르고 투명해진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발로 뛰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진짜 낭만’을 되찾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풍경 아닐까요?

    ▲ 도쿄에 위치한 JR 하라주쿠역 신역사 건물 외관.
    ▲ 도쿄에 위치한 JR 하라주쿠역 신역사 건물 외관.
    사진: Tokuzo in Edomur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Takarajima Sha, 『Street Jack』 & 『Boon』 1990s Fashion Magazine Archives.
    • Hypebeast & Grailed Historical Archive: “A History of Ura-Harajuku Movement”, 2017.
    • I.T Group Official Press Release: “Acquisition of Nowhere Co., Ltd.”, February 2011.
    • Fashion Press Japan, 「裏原宿カルチャーの軌跡と変遷」, 2019.
  •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우라하라 스트리트: 파이렉스·오프화이트·루이비통에 깃든 도쿄의 유산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우라하라 스트리트: 파이렉스·오프화이트·루이비통에 깃든 도쿄의 유산

    서브컬처가 럭셔리의 문을 열기까지

    패션계를 뒤흔들었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기억하시나요? 건축과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가 럭셔리 하우스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에 올랐을 때, 많은 이들이 패션계의 문법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버질 아블로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패션 교육은 파리의 화려한 패션 스쿨이 아닌, 1990년대 도쿄의 뒷골목 ‘우라하라(裏原宿)’에서 이루어졌다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챔피온 티셔츠에 숫자를 찍어내던 인디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부터 세계 최고의 패션 하우스 루이비통에 이르기까지, 그의 디자인 철학 밑바탕에는 늘 도쿄 스트리트웨어의 유산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라하라의 작은 티셔츠 가게에서 시작된 실험이 어떻게 30년 뒤 파리 퐁뇌프 다리와 럭셔리 런웨이를 정복하게 되었을까요? 그 흥미진진한 궤적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라하라, 버질 아블로의 위대한 학교

    1990년대 초 도쿄 하라주쿠의 비좁은 주택가 골목길, 일명 ‘우라하라’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의 지휘 아래, 니고(NIGO)와 다카하시 준(Jun Takahashi) 같은 젊은이들이 모여 작은 상점 ‘노웨어(NOWHERE)’를 열고 자신들만의 그래픽 티셔츠를 소량 인쇄해 팔기 시작했죠.

    미국 시카고 외곽 록퍼드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힙합을 듣던 10대의 버질 아블로는 지구 반대편 도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새로운 공기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일본 잡지를 어렵게 구해 보며 베이프(A Bathing Ape), 언더커버(Undercover), 굿이너프(Goodenough)의 행보를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버질은 훗날 니고를 가리켜 “내 패션 인생에서 만난 최초의 진정한 멘토”라고 불렀습니다. 정통 꾸뛰르 학교의 가르침 대신, 빈티지 미학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던 우라하라의 서브컬처가 버질 아블로에게는 최고의 종합대학이었던 셈입니다.

    인물 우라하라 씬에서의 역할 버질 아블로에게 미친 영향
    후지와라 히로시 굿이너프 설립, 우라하라의 대부 서브컬처와 하이엔드를 잇는 협업의 문법 전수
    니고 (NIGO) A Bathing Ape 설립 그래픽 아카이브 구축, 브랜딩 및 멘토십 제공
    다카하시 준 언더커버 설립 펑크 록과 그런지 스트리트웨어의 실험적 결합
    ▲ 도큐 플라자 오모테산도 하라주쿠 거울에 비친 하라주쿠 거리 풍경.
    ▲ 도큐 플라자 오모테산도 하라주쿠 거울에 비친 하라주쿠 거리 풍경.
    사진: Basile Mori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파이렉스 비전과 오프화이트에 깃든 도쿄의 그래픽 미학

    버질 아블로가 2012년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린 프로젝트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떠올려 볼까요? 그는 랄프 로렌의 럭비(Rugby) 라인 데드스톡 플란넬 셔츠와 챔피온(Champion) 반바지를 사들여, 등판에 굵직한 폰트로 ‘PYREX’와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 ’23’, 그리고 카라바조의 명화를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냈습니다.

    기성품을 가져와 약간의 그래픽만 덧입혀 몇 배의 가격에 판매하는 이 방식은 당시 패션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90년대 초반 노웨어(NOWHERE) 시절, 니고와 준이 헤인즈나 챔피온 무지 티셔츠에 손수 실크스크린 잉크를 밀어 넣으며 그래픽 티셔츠 문화를 탄생시켰던 우라하라의 DIY 인쇄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었습니다.

    버질 아블로가 정립한 유명한 명제, “기존의 형태에서 단 3%만 바꾸면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된다”는 ‘3% 접근법(3 Percent Approach)’ 역시 우라하라 크리에이터들이 50년대 빈티지 아메카지 의류를 샘플링하고 비틀던 방식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이후 그가 론칭한 오프화이트(Off-White)의 시그니처인 사선 스트라이프(Diagonals)와 따옴표 그래픽 역시 도쿄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날것 그대로의 인쇄 미학을 현대적으로 정제해 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스트리트웨어는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일종의 공동체이자, 기존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아이디어들의 집합체입니다.”
    — 버질 아블로

    퐁뇌프 다리에서 만난 두 사람: 루이비통과 LV² 컬렉션

    2018년,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 남성복 총괄 디렉터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홀로 영광을 독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취임 후 그가 성사시킨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바로 자신의 오랜 멘토인 니고를 루이비통으로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LV² (Louis Vuitton Squared)’ 캡슐 컬렉션은 패션사에 매우 상징적인 장면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럭셔리 하우스와 스트리트웨어 거장의 만남이라기에 흔한 후디나 로고 티셔츠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 정교한 테일러링: 1950~60년대 영국 런던 새빌 로(Savile Row)의 모즈 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트
    • 장인정신의 데님: 일본 장인들이 직조한 셀비지 데님에 루이비통의 다미에(Damier) 체크와 모노그램을 패치워크한 재킷
    • 동양적 위트: 니고의 브랜드 휴먼메이드(Human Made)를 연상시키는 만화적인 오리와 거북이 그래픽 자수

    두 사람은 스트리트웨어가 단순한 길거리 옷이 아니라, 하이엔드 테일러링과 일본의 워크웨어 장인정신까지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문화적 그릇임을 루이비통의 아카이브를 통해 당당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 2019년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 2019년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사진: Myles Kalus Anak Jihem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길거리에서 럭셔리의 왕좌까지: 30년이 남긴 것

    1993년 도쿄 우라하라의 작은 상점에서 시작된 티셔츠 한 장의 꿈은 버질 아블로라는 매개체를 거쳐 2020년대 파리 럭셔리의 심장부로 이어졌습니다. 서브컬처를 즐기던 소년들이 마침내 전통 하우스의 왕좌에 앉아 패션의 규칙을 다시 쓴 것입니다.

    버질 아블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도쿄에서 흡수하고 파리에서 만개시킨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니고는 현재 LVMH 산하의 역사 깊은 프랑스 브랜드 겐조(Kenzo)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루이비통의 바통은 버질과 니고의 오랜 친구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에게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입는 고급스러운 그래픽 티셔츠와 스니커즈, 그리고 테일러링과 스트리트웨어의 조화는 우라하라의 골목길에서 싹터 버질 아블로의 손끝에서 완성된 30년간의 문화적 결실인 것입니다.

    ▲ 2004년 보수 공사 중 거대한 트렁크 가림막이 설치된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 외관.
    ▲ 2004년 보수 공사 중 거대한 트렁크 가림막이 설치된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 외관.
    사진: Rodney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Marks, W. David.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Abloh, Virgil. 『Figures of Speech』, DelMonico Books · Prestel, 2019.
    • Vogue Runway, 「Louis Vuitton LV² Pre-Fall 2020 Collection Review & Virgil Abloh Interview」, 2020.
    • Highsnobiety, 「Visiting Virgil Abloh and NIGO in Their Tailoring Time Machine」, 2021.
    • Sotheby’s, 「Virgil Abloh on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Nigo」 Official Archive, 2019.
  • 슈프림(Supreme)과 도쿄 우라하라의 역사: 뉴욕 스케이터 브랜드가 도쿄에서 배운 비즈니스

    슈프림(Supreme)과 도쿄 우라하라의 역사: 뉴욕 스케이터 브랜드가 도쿄에서 배운 비즈니스

    1994년 뉴욕 라파예트 스트리트, 스케이터들의 아지트

    1994년 4월, 미국 뉴욕 소호 외곽의 한적한 라파예트 스트리트(Lafayette Street)에 작은 옷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에는 붉은색 직사각형 바탕에 흰색 볼드체로 ‘Supreme’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죠.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원래 영국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와 배터리 파크 벼룩시장에서 옷을 팔았고, 이후 전설적인 편집숍 유니언(Union)과 스투시(Stüssy) 뉴욕 매장을 운영하며 다운타운의 유스 컬처를 온몸으로 흡수했습니다.

    당시 제비아가 슈프림을 연 목적은 거창한 패션 제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뉴욕에는 거친 도로를 누비는 로컬 스케이터들이 편하게 모여 음악을 듣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드물었습니다. 제비아는 매장 바닥을 넓게 비워 스케이터들이 보드를 탄 채 들어올 수 있게 설계했고, 실제 거리의 스케이터들을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뉴욕 서브컬처의 생생한 에너지가 그대로 응축된 장소였죠.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작은 뉴욕 매장에서 팔리는 그래픽 티셔츠와 후디에 가장 먼저 뜨겁게 반응한 이들은 뉴욕 시민만이 아니었습니다. 태평양 건너 일본 도쿄에서 날아온 패션 바이어들과 여행자들이었죠.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한 패션 디자이너 니고(NIGO).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한 패션 디자이너 니고(NIGO).
    사진: Sry85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 도쿄 하라주쿠 캣스트리트에 위치한 의류 매장 외관
    ▲ 도쿄 하라주쿠 캣스트리트에 위치한 의류 매장 외관
    사진: Joe Mabel on Flickr as Joe Mabel from Seattle, U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 슈프림(Supreme)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
    ▲ 슈프림(Supreme)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
    사진: Daniel Marchan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왜 미국보다 일본에 먼저 3개의 매장을 열었을까?

    슈프림의 매장 확장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통 미국 브랜드가 성장하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같은 자국 대도시로 먼저 뻗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슈프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픈 연도 매장 위치 국가
    1994년 뉴욕 라파예트 스트리트 미국
    1998년 도쿄 다이칸야마 일본
    1998년 오사카 미나미호리에 일본
    1998년 후쿠오카 텐진 일본
    2004년 로스앤젤레스 페어팩스 미국
    2006년 도쿄 하라주쿠 일본

    1994년 뉴욕 본점을 연 지 4년 만인 1998년, 슈프림은 미국 본토의 다른 도시가 아니라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오사카, 후쿠오카에 연달아 3개 매장을 열었습니다. 미국 2호점인 LA 페어팩스 매장이 2004년에야 열렸으니, 무려 10년 가까이 슈프림 매장은 미국에 1개, 일본에 3~4개가 존재하는 기현상이 이어진 셈입니다.

    제임스 제비아는 왜 이렇게 일본 시장에 과감하게 베팅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1990년대 초반부터 스투시와 유니언을 통해 끈끈한 신뢰를 쌓아온 일본 스트리트웨어의 거장,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파트너 켄 오무라(Ken Omura, 원그램 대표)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서브컬처를 단순히 입는 옷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옷의 원단, 스티치, 담긴 음악적 배경까지 학구적으로 파고들며 진심으로 존중했죠. 그들의 눈빛을 보고 일본 시장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 제임스 제비아 인터뷰 중 발췌

    ▲ 시부야 스트림에서 내려다본 다이칸야마 일대의 도심 전경
    ▲ 시부야 스트림에서 내려다본 다이칸야마 일대의 도심 전경
    사진: Syced / CC0 / Wikimedia Commons

    후지와라 히로시와 우라하라가 전해준 ‘드롭’의 비밀

    1990년대 도쿄 하라주쿠의 좁은 뒷골목, 이른바 ‘우라하라(裏原宿)’에서는 세계 패션 지형을 바꿀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굿이너프(Goodenough), 니고(Nigo)의 어 베이싱 에이프(A Bathing Ape), 준 다카하시의 언더커버(Undercover)가 탄생한 곳이죠.

    우라하라 디자이너들은 돈이 없어서 옷을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량 생산과 백화점 유통이 브랜드의 신비감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티셔츠를 수십 장, 많아야 수백 장 단위로만 제작했고, 재고가 떨어져도 절대 추가 생산(리스톡)을 하지 않았습니다. 잡지 《타카라지마》나 《스마트》의 작은 칼럼에 신제품 소식을 짤막하게 공개하면, 주말 아침 골목길에 수백 명의 소년들이 줄을 서서 제품을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죠.

    제임스 제비아는 도쿄를 오가며 이 우라하라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뉴욕 라파예트에 고스란히 이식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글로벌 패션계의 표준이 된 ‘드롭(Drop)’ 시스템입니다.

    슈프림은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처럼 한 시즌의 모든 옷을 한 번에 매장에 깔지 않았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일본은 토요일), 정해진 시간에만 아주 적은 수량의 신제품을 매장에 풀었습니다. 품절된 옷은 다시 생산하지 않았죠. 이로 인해 손님들은 매주 매장을 방문해야만 했고, 매장 앞에는 자연스럽게 긴 줄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라하라의 ‘희소성 통제 비즈니스’가 뉴욕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결합하여 전례 없는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 잡지 '큐티' 화보에 등장한 후지와라 히로시.
    ▲ 잡지 ‘큐티’ 화보에 등장한 후지와라 히로시.
    사진: Vast Ozone Studio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하라주쿠 매장과 아시아 스트리트의 진원지

    2006년, 슈프림은 도쿄 하라주쿠의 핵심 골목에 또 하나의 매장을 오픈합니다. 이 매장의 위치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타키자와 신스케가 이끄는 네이버후드(Neighborhood) 매장 바로 윗층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반항적인 스케이트 브랜드와 도쿄 모터사이클/밀리터리 스트리트의 정수가 한 건물에서 공존하게 된 것이죠.

    다이칸야마와 하라주쿠의 슈프림 매장은 금세 아시아 전역의 서브컬처 팬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홍콩, 대만, 한국의 스트리트웨어 애호가들은 도쿄 매장 앞에서 밤을 새워 번호표를 받았고, 영화배우 쿠보즈카 요스케(Yosuke Kubozuka) 같은 당대 최고의 서브컬처 아이콘들이 슈프림을 입은 모습이 잡지에 실리며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제임스 제비아는 단순히 미국 옷을 일본에 가져다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품 룩북을 만들 때도 일본 특유의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도쿄 편집숍의 큐레이션 역량을 전폭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우라하라 크루들이 뉴욕 스케이터들의 거친 정체성을 현대적인 ‘수집품(Collectible)’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준 것입니다.

    뉴욕의 반항과 도쿄의 큐레이션이 빚어낸 성공

    오늘날 슈프림은 루이 비통, 티파니, 노스페이스 등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시가총액 수조 원에 달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공의 밑바탕에는 뉴욕과 도쿄라는 두 도시의 절묘한 문화적 공생이 있었습니다.

    뉴욕이 슈프림에게 타협하지 않는 길거리의 애티튜드, 스케이터들의 날것 그대로의 반항심, 그리고 힙합과 그런지라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면, 도쿄의 우라하라는 그것을 알아보고 가공할 줄 아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물했습니다. 수량을 통제하여 갈증을 유발하는 지혜, 하위문화를 예술과 아카이브의 반열로 승화시키는 세심한 장인정신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거리의 멋을 지키면서도 상업적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낸 비결. 뉴욕의 감성과 도쿄의 시스템이 만났을 때 비로소 21세기 가장 강력한 스트리트 브랜드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Glenn O’Brien, “James Jebbia is Supreme”, 『Interview Magazine』, 2009년 인터뷰 자료.
    • Supreme New York, 『Supreme: Downtown New York Skate Culture 1994-2010』, Rizzoli, 2010.
    • Takarajima Inc., 『LAST ORGY 2 & Asayan Archive Collection』, 1993~1998년 잡지 아카이브 자료.
  • 타이가 타카하시(Taiga Takahashi) 브랜드 철학과 아카이브: 100년 전 빈티지를 복각한 고고학자

    타이가 타카하시(Taiga Takahashi) 브랜드 철학과 아카이브: 100년 전 빈티지를 복각한 고고학자

    ▲ 1920년대 빈티지 셀비지 데님 직조의 모태가 된 도요타 G형 자동 방직기 (Toyoda Type G)
    ▲ 1920년대 빈티지 셀비지 데님 직조의 모태가 된 도요타 G형 자동 방직기 (Toyoda Type G)
    사진: Joy of Museum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900년대 옷을 해체한 디자이너의 고고학적 탐구

    옷을 단순히 계절마다 바뀌는 유행으로 보지 않고, 먼 옛날의 유물처럼 대했던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T.T(구 Taiga Takahashi)’를 설립한 디자이너 타이가 타카하시(Taiga Takahashi, 1995~2022) 이야기입니다.

    타카하시는 10대 시절부터 1900년대 초반에서 1930년대 사이에 제작된 아메리칸 빈티지 워크웨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시기는 미국이 규격화된 대량 생산 체제에 돌입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의 옷들은 저마다 독특한 원사 굵기, 장인의 손길이 닿은 바느질, 천연 염색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죠. 타카하시는 이 옷들을 단순한 수집품으로 모셔두지 않았습니다. 칼로 솔기를 뜯어내고 실을 풀어헤치며 옷의 내부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뜯어보았습니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한 뒤, 그는 자신을 디자이너라기보다 ‘고고학자’에 가깝다고 정의했습니다.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유행을 선도하기보다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내려가 잊힌 기술과 가치를 캐내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를 ‘응용 고고학(Applied Archaeology)’이라 불렀습니다.

    실 한 올의 꼬임부터 천연 염색까지, 시간을 복원하는 방식

    패션계에는 과거의 옷을 재현하는 ‘복각(Reproduction)’ 브랜드가 많습니다. 하지만 타이가 타카하시의 방식은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겉모습만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100년 전 의류가 지닌 물리적 법칙과 시간의 흔적 자체를 되살려내고자 했습니다.

    복원 연구 항목 타이가 타카하시의 고고학적 접근 방식
    원사 및 방직 1920년대 의류의 실을 풀어 꼬임 수(회전수)를 측정하고, 구형 셔틀 역직기로 고밀도 직조
    염색 기법 화학 염료 대신 1,000년 전통의 교토 천연 식물 염색, 감즙(카키시부), 진흙 염색 활용
    부자재 대량 생산 플라스틱 대신 녹이 스는 무도금 철제 버튼, 물소 뿔, 깎아 만든 목재 단추 사용
    봉제 및 설계 100년 전 봉제선의 땀수와 장력을 측정해 당시 노동복 특유의 불균일한 입체감 구현

    그는 실제로 1920년대 데님 재킷과 스웨트셔츠의 원사를 분해해 실의 회전수와 꼬임의 강도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원사를 짜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현재 거의 사라진 구형 셔틀 방직기를 수소문했습니다. 천천히 덜컹거리며 직조되는 구형 기계만이 당시 특유의 울퉁불퉁한 표면 질감(슬러브)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염색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화학 염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위해 수백 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 염색 장인들을 찾았습니다. 덜 익은 감에서 추출한 즙으로 햇빛을 쬐어가며 물들이는 감즙 염색, 진흙에 담가 색을 입히는 염색 방식을 옷에 적용했죠. 단추 하나를 달 때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산화되는 철제 부자재나 목재 단추를 고집했습니다. 그에게 옷이란 만들어진 순간 완성되는 물건이 아니라, 주인의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유기체였습니다.

    뉴욕과 교토를 잇는 거점, 그리고 27세에 멈춘 시간

    타이가 타카하시는 2017년 뉴욕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출범시킨 뒤, 2021년 12월 일본 교토의 역사적인 거리 기온(祇園)에 플래그십 스토어 ‘T.T’를 열었습니다. 100년이 넘은 일본 전통 목조 가옥(마치야)을 복원해 만든 이 공간은 단순한 옷가게가 아니었습니다.

    매장 1층에는 타카하시가 수집한 수천 점의 아메리칸 빈티지 의류와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의복들이 전시되었고, 건물 안쪽에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돌과 흙으로 구성한 정원과 다실 ‘시카루미(然美)’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는 물질과 공간, 차 문화가 결합된 이 공간에서 ‘과거를 계승해 100년 후의 미래로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옷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과거의 유물을 되살림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한다.”
    — 타이가 타카하시

    그러나 그의 찬란한 탐구는 너무 일찍 멈추고 말았습니다. 교토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던 2022년 4월 9일, 타이가 타카하시는 향년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대 패션계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천재의 여정에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왜 현대 패션계는 그의 유작을 ‘시간을 초월한 옷’이라 부르는가

    디자이너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브랜드 ‘T.T’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전 타카하시와 함께 작업했던 디자인 팀과 아카이브 연구팀, 그리고 일본의 장인들이 그의 뜻을 이어 브랜드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수천 점의 빈티지 아카이브와 꼼꼼한 연구 기록 노트는 여전히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귀중한 지도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타카하시가 세상을 떠난 후, 교토의 호소 갤러리(HOSOO GALLERY)와 도쿄 소게츠 회관 등에서 그의 유작과 수집품을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잇달아 열렸습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과 비평가들은 그의 옷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시간을 담아낸 조각품’으로 평가했습니다.

    패스트 패션이 넘쳐나고 몇 달 만에 옷이 버려지는 오늘날, 100년 전의 실을 연구해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옷을 지으려 했던 타이가 타카하시. 2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가 증명해 보인 것은 옷이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시대를 건너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단단한 문화적 기억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T.T (Taiga Takahashi) Official Archive & Biography (taigatakahashi.com)
    • HOSOO GALLERY, 《Texture from Textile Vol.2: Clothing of Time》 Exhibition Notes (Kyoto, 2023)
    • Sogetsu Kaikan, 《Listening to the Voices of Relics, Garden of Applied Archaeology》 Exhibition Catalog (Tokyo, 2024)
    • CASANOVA&CO, Official Commemorative Statement on Taiga Takahashi (2022)
    • OK-RM & Taiga Takahashi, 《The Eternal Past: Applied Archaeology》 Project Monograph (London/Kyoto)
  • 캐피탈(KAPITAL) 브랜드 역사와 아카이브: 오카야마 데님 장인들이 만든 보로·반다나의 기적

    캐피탈(KAPITAL) 브랜드 역사와 아카이브: 오카야마 데님 장인들이 만든 보로·반다나의 기적

    오카야마현 남쪽의 작은 항구 도시 고지마(児島). 오늘날 빈티지 데님 매니아들에게는 성지로 통하는 이곳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캐피탈(KAPITAL)입니다.

    리바이스의 옛 원단을 똑같이 재현하는 완벽한 복각(Reproduction)이 일본 데님계의 절대적인 미덕으로 통하던 시절, 캐피탈은 낡은 천을 덧대어 꿰맨 에도 시대의 누더기 옷 ‘보로(Boro)’와 뼈다귀(Skeleton) 자수를 들고 나왔습니다. 미국 워크웨어의 모방에 머물지 않고, 일본 고유의 전통 민예와 자유로운 히피 정신을 결합해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한 히라타 가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편안하게 들려드립니다.

    1. 가라테 사범과 45rpm 디자이너: 히라타 부자의 만남

    캐피탈의 역사는 창립자 히라타 토시키요(平田俊清)로부터 시작됩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가라테를 가르치던 그는 그곳에서 50~60년대 빈티지 아메리칸 데님을 접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낡아갈수록 멋이 살아나는 인디고 원단의 매력에 매료된 그는 1984년 귀국하여 일본 섬유 생산의 중심지였던 오카야마 고지마에 작은 봉제 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듬해인 1985년, ‘일본 데님의 수도(Capital)’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담아 세운 브랜드가 바로 캐피탈(KAPITAL)이었습니다. 초기 캐피탈은 오카야마의 뛰어난 봉제와 염색 기술을 바탕으로 유명 브랜드들의 OEM(위탁 생산)을 맡으며 탄탄한 기술력을 다져나갔습니다.

    시기 주요 역사 및 변곡점
    1984~1985년 히라타 토시키요, 오카야마 고지마에 봉제 공장 설립 및 ‘캐피탈’ 창립
    2002년 아들 히라타 키로 합류, 브랜드 리브랜딩 시작
    2010년 특수 염색·가공 아틀리에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 설립
    2013년 첫 번째 ‘보로(Boro)’ 트러커 자켓 출시 및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 원단 협력

    브랜드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도쿄의 유명 인디고 캐주얼 브랜드 ’45rpm(현 45R)’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들 히라타 키로(平田和宏)가 고향 고지마로 돌아와 아버지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빈티지 데님의 완벽한 복각과 기술적 토대를 완성하셨다면, 제 역할은 그 위에 아무도 보지 못한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에 집착하는 완고한 장인 아버지와, 예술적 감각과 해체주의적 시각을 지닌 아들의 결합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캐피탈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빚어내기 시작했습니다.

    ▲ 캐피탈(KAPITAL) 시그니처 빈티지 반다나 패치워크 1st 타입 자켓
    ▲ 캐피탈(KAPITAL)의 시그니처 반다나 패치워크 재킷

    2. ‘보로(Boro)’와 사시코: 누더기 천을 하이엔드 예술로 바꾸다

    캐피탈의 시그니처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보로(Boro, ぼろ)’입니다. 보로는 본래 일본 도호쿠 지방 등 추운 북부 지역의 가난한 농어민들이 거친 무명천이나 삼베 옷이 해어질 때마다 남은 천 조각을 덧대고 꿰매 대를 이어 입던 전통 누더기 옷을 뜻합니다. 솜이 귀하던 시절 옷감을 두껍게 만들어 추위를 견디기 위해 흰 실로 촘촘히 누비던 바느질 기술이 바로 ‘사시코(刺し子)’입니다.

    한때 가난의 상징이자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되어 버려지던 보로를, 키로 히라타는 가장 일본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한 텍스타일 아트로 바라보았습니다. 캐피탈은 옛 원단 조각들을 모으고, 이를 현대적인 1st 타입 데님 트러커 자켓 위에 사시코 스티치와 함께 패치워크로 재구성했습니다.

    2013년, 당시 루이비통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킴 존스(Kim Jones)는 캐피탈의 보로 작업물에 깊은 영감을 받아 원단 협력을 요청했고, 같은 해 캐피탈은 자체 라인으로 전설적인 ‘보로 자켓’을 출시했습니다. 서로 다른 톤의 인디고 조각들이 수십 번의 워싱과 핸드메이드 바느질을 거치며 빚어내는 질감은 옷이라기보다 한 편의 추상화에 가까웠습니다. 100년을 입을 수 있도록 사시코 자수를 전면에 촘촘히 채워 넣은 ‘센츄리 데님(Century Denim)’ 역시 이러한 장인정신에서 탄생한 걸작입니다.

    ▲ 일본 에도·메이지 시대의 전통 보로(Boro) 인디고 사시코 패치워크 섬유
    ▲ 다양한 인디고 패치워크와 사시코 자수로 완성된 전통 보로(Boro) 직물 디테일

    3.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 장인정신과 워싱 가공의 비밀

    캐피탈의 옷들이 일반적인 워크웨어와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오카야마 현지에 구축한 자체 가공 아틀리에 ‘카운트리(KOUNTRY)’에 있습니다. 고지마의 맑은 용수와 전통 염색 장인들이 모여 있는 이 공장은 캐피탈의 실험실 역할을 합니다.

    카운트리 공장에서는 옷을 완성한 뒤 일부러 칼집을 내고, 흙과 돌을 넣어 수십 시간씩 워싱을 돌리며, 찻잎, 감즙(카키시부), 진흙(도록조메), 천연 인디고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염색합니다. 대량 생산 공장에서는 흠집이나 불량으로 여겨질 법한 얼룩과 뜯김을 시간의 흔적을 담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곳입니다.

    자연스러운 빈티지 가공을 넘어, 히피적인 패치워크와 반다나 패턴의 해체, 그리고 동양적인 실루엣의 결합은 카운트리 장인들의 손끝을 거치며 독보적인 ‘캐피탈 룩’으로 완성됩니다.

    ▲ 캐피탈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의 정교한 빈티지 디스트로이드 가공 자켓
    ▲ 캐피탈(KAPITAL)의 반다나 패치워크 재킷

    4. 스켈레톤과 스마일: 글로벌 스트리트 컬처를 뒤흔들다

    아메카지(아메리칸 캐주얼)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공유되던 캐피탈이 전 세계 유스 컬처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는 뜻밖의 모티프들이었습니다. 바로 등판을 가득 채운 스켈레톤(뼈다귀) 자수와 발뒤꿈치나 팔꿈치에 위트 있게 박힌 스마일(Smiley) 로고입니다.

    정교한 퀼팅과 사시코 기법으로 인체의 척추와 갈비뼈를 수놓은 본(Bone) 자켓과 니트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과 1960년대 미국의 사이키델릭 히피 문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통 장인 기술에 위트와 서브컬처적 반항심을 섞어 넣은 이 디자인은 2010년대 후반 글로벌 패션 신을 강타했습니다.

    패션 아이콘 에이셉 라키(A$AP Rocky)가 캐피탈의 본 플리스와 데님 자켓을 걸치고 뮤직비디오와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불이 붙었습니다. 트래비스 스캇, 존 메이어, 퍼렐 윌리엄스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앞다투어 고지마의 외딴 매장과 도쿄 에비스 매장을 찾아 옷을 사 모았고, 리셀 시장에서는 정가의 몇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 글로벌 패션 신을 강타한 캐피탈의 아방가르드 패치워크와 페인팅 룩북
    ▲ 반다나 패치워크 반소매 셔츠와 페인트 스플래터 팬츠를 착용한 스트리트 스타일링

    5. 과거를 베끼지 않고 미래의 빈티지를 만들다

    일본의 수많은 데님 브랜드들이 1940~50년대 미국의 빈티지 리바이스를 1인치당 바늘 땀수까지 똑같이 재현하는 데 몰두할 때, 캐피탈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옷이 과연 백 년 뒤에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빈티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캐피탈은 미국의 옷을 그대로 베끼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오카야마의 봉제와 염색 기술 위에, 일본 농민들의 생존 기술이었던 보로를 얹고, 여기에 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자유분방함을 섞었습니다. 서양의 문화를 동양의 기술로 재해석해 다시 서양의 젊은 세대를 열광하게 만든 것입니다.

    한 벌의 낡은 옷에 깃든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흠집조차 개성으로 끌어안는 캐피탈의 옷들. 완벽함보다 불완전함 속의 따뜻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철학이야말로 오늘날 정형화된 패션계에서 캐피탈이 여전히 독보적인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1.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2. GQ Magazine, “How Kapital Became the Coolest Cult Brand in Japan” (Interview with Kiro Hirata).
    3. Heddels Archive, “Kapital – History, Philosophy, and Iconic Products”, 2018.
    4. Louis Vuitton Official Archive, “Spring/Summer 2013 Menswear Collection by Kim Jones”.
  • 비즈빔(visvim) 헤리티지와 FBT: 에릭 클랩튼·존 메이어가 나카무라 히로키에 반한 이유

    비즈빔(visvim) 헤리티지와 FBT: 에릭 클랩튼·존 메이어가 나카무라 히로키에 반한 이유

    스노우보드 디자이너가 만든 이상한 신발, 비즈빔의 시작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바로 ‘비즈빔(Visvim)’입니다. 티셔츠 한 장에 수십만 원, 코트나 재킷은 수백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 브랜드이지만, 로고를 크게 드러내지도 화려한 파티를 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의 수많은 패션 애호가들과 아티스트들은 왜 이 브랜드에 그토록 열광할까요?

    이야기는 비즈빔의 설립자 나카무라 히로키(Hiroki Nakamura)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쿄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해외를 자주 여행했고, 10대 시절에는 미국 알래스카로 훌쩍 떠나 스노우보드를 타고 캠핑을 즐기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알래스카 대자연 속에서 원주민들의 실용적인 복식과 빈티지 아메리카나(Americana) 문화를 직접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죠.

    이후 그는 세계적인 스노우보드 브랜드인 ‘버튼(Burton Snowboards)’에서 8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혹독한 눈밭을 견뎌내는 고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며 첨단 소재와 기능성에 통달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대량 생산되는 합성 섬유 옷들은 새것일 때 가장 멋지고, 시간이 흐르면 낡아서 버려질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입을수록 사람의 손때가 묻고, 세월과 함께 더 깊은 멋을 내는 물건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는 2001년 회사를 나와 도쿄에서 독립 브랜드 ‘비즈빔’을 세웠습니다. 브랜드 이름조차 거창한 뜻이 아니라, 라틴어 사전의 ‘V’ 섹션을 넘기다 힘과 에너지를 뜻하는 ‘vis’와 ‘vim’ 두 단어의 형태감이 마음에 들어 붙인 것이었습니다.

    ▲ 비즈빔(Visvim)을 대표하는 커치프 반다나 다운 자켓(Kerchief Down Jacket)
    ▲ 반다나 패턴 다운 패딩 재킷을 착용한 모델

    FBT 모카신,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에 비브람을 덧대다

    초기 비즈빔을 전 세계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는 옷이 아닌 신발이었습니다. 2001년 말과 2002년 초, 나카무라 히로키는 자신의 멘토이자 우라하라 스트리트 씬의 대부였던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1980년대 영국의 뉴웨이브 팝 밴드 ‘펀 보이 쓰리(Fun Boy Three)’의 LP 앨범 커버를 건네며, 멤버 테리 홀이 신고 있는 독특한 원주민풍 신발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감에서 출발해 밴드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 지은 신발이 바로 전설적인 ‘FBT’입니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북미 원주민들이 사슴 가죽으로 발을 감싸 만들던 전통 모카신에 주목했습니다.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스웨이드 프린지와 구슬 장식은 전통 수작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되, 밑창에는 이탈리아 비브람(Vibram)사의 첨단 고무 밑창과 EVA 미드솔을 결합했습니다. 전통 신발의 편안함과 현대 운동화의 쿠셔닝을 절묘하게 섞어낸 이 하이브리드 슈즈는 당시 스트리트웨어 씬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대기업 스니커즈에 익숙했던 젊은이들에게 천연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카신 스니커즈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였습니다.

    ▲ 빈티지 패브릭과 수작업 디테일이 집약된 비즈빔 인디고 반다나 셔츠
    ▲ 다양한 인디고 패치워크 원단을 조합해 제작된 비즈빔의 셔츠 재킷

    진흙 염색부터 사시코까지, 지구상 가장 번거로운 제작 방식

    신발의 성공 이후 나카무라 히로키는 의류 라인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패션계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효율성과 원가 절감을 최고로 치는 현대 의류 산업에서, 그는 정반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 공예 기술을 고집했습니다.

    • 아마미오시마의 진흙 염색 (도로조메, 泥染め): 일본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섬에서 1,3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 염색 기법입니다. 테치키(차륜매) 나무를 삶은 즙으로 옷감을 물들인 뒤, 미네랄이 풍부한 섬의 진흙 논에 원단을 넣고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주무릅니다. 식물 탄닌과 진흙의 철분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화학 염료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매트한 흑갈색이 완성됩니다.
    • 천연 인디고와 코치닐 염색: 합성 화학 염료 대신 식물성 쪽(Natural Indigo)과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 코치닐(Cochineal)을 사용합니다. 손으로 여러 번 담그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얻어낸 색감은 햇빛과 마찰을 겪으며 사용자만의 독특한 색 바램을 만듭니다.
    • 전통 누비 자수 ‘사시코(Sashiko)’와 패치워크: 에도 시대 농민들이 해진 옷을 오래 입기 위해 천을 덧대고 촘촘하게 손바느질하던 사시코 기법을 현대적인 재킷과 아우터에 적용했습니다. 100년 된 빈티지 원단을 해체해 한 땀 한 땀 손으로 이어 붙이기도 합니다.
    비즈빔의 핵심 전통 공예 제작 지역 및 기법 시각적·기능적 특징
    도로조메 (Mud Dye) 일본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섬의 진흙 논 철분 반응을 통한 차분하고 깊은 흑갈색 톤과 항균 효과
    천연 인디고 (Aizome) 도쿠시마현 등 전통 쪽 염색 장인 수작업 입을수록 마찰 부위가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경년변화
    사시코 (Sashiko) 일본 고유의 손바느질 누비 공예 원단의 내구성을 높이고 수작업 특유의 따뜻한 질감 제공
    FBT 모카신 구조 북미 원주민 모카신 + 이탈리아 비브람 솔 전통 가죽 공예의 착화감과 현대 스니커즈의 접지력 결합
    ▲ 도쿄 부도칸에서 공연 중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밴드

    에릭 클랩튼과 존 메이어가 열광한 이유, ‘미래의 빈티지’

    비즈빔의 매장 F.I.L.(Free International Laboratory)에는 화려한 조명 대신 자연광이 들어오고, 은은한 인센스 향과 나무 냄새가 맴돕니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자신의 옷을 두고 ‘미래의 빈티지(Future Vintage)’라고 부릅니다. 50년 뒤, 100년 뒤 빈티지 숍의 옷걸이에 걸려 있어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진심 어린 고집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었습니다. 기타의 전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비즈빔의 초창기부터 열렬한 팬이 되어 공연 때마다 비즈빔의 셔츠와 재킷을 즐겨 입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John Mayer)는 스스로를 ‘비즈빔 덕후’라 부르며 수억 원대의 비즈빔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콘서트 무대에 천연 염색 노라기(Noragi) 재킷을 입고 올라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화려한 로고를 내세워 부를 과시하는 명품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시간과 습관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으로 완성되는 과정 때문입니다.

    스노우보드 디자이너였던 한 청년이 원주민의 지혜와 사라져가던 장인들의 손길을 엮어 만들어낸 비즈빔. 빠른 유행과 패스트패션이 넘쳐나는 오늘날, 비즈빔이 보여주는 묵직한 발걸음은 진짜 럭셔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비즈빔의 열렬한 수집가 존 메이어(John Mayer)
    ▲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는 존 메이어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Visvim Official Dissertation Series, “Concept of visvim & Future Vintage”, Visvim TV Archive.
    • The Business of Fashion (BoF), “Hiroki Nakamura: The BoF 500 Profile & Interview”, BoF Archive.
    • Grailed Master Class, “Visvim Visions: The Brand Hiroki Nakamura Built”, Grailed Cultural Archive, 2017.
  • 넘버나인(Number (N)ine) 명작 시즌과 아카이브: 미야시타 타카히로와 너바나의 그런지 룩

    넘버나인(Number (N)ine) 명작 시즌과 아카이브: 미야시타 타카히로와 너바나의 그런지 룩

    2000년대 도쿄 패션계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가슴 한구석을 뜨겁게 달궜던 이름이 하나 있을 겁니다. 바로 미야시타 타카히로(Takahiro Miyashita)가 이끌던 ‘넘버나인(Number (N)ine)’입니다.

    당시 우라하라의 주류가 힙합과 그래픽 티셔츠 기반의 스트리트웨어였다면, 넘버나인은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렸습니다. 낡아서 뜯겨 나간 모헤어 니트, 덧댄 패치워크 데님, 그리고 옷 구석구석에 새겨진 서정적인 음표들까지. 미야시타는 커트 코베인의 기타 피드백 소음과 그런지(Grunge) 음악의 우울을 가장 정교한 하이패션으로 빚어낸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패션 학교 한 번 다닌 적 없던 소년이 어떻게 전 세계 패션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는지, 그 흥미로운 궤적을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1. 정규 교육 없이 오직 록과 빈티지로 채운 청춘

    1973년 도쿄에서 음악가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미야시타 타카히로는 전형적인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영화 <아웃사이더>와 미국 서브컬처에 흠뻑 빠져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도쿄의 거리와 빈티지 숍을 전전하며 옷을 배웠죠.

    그의 결정적인 스승이 된 곳은 유명 편집숍 ‘네펜데스(Nepenthes)’였습니다. 네펜데스의 설립자 시미즈 케이조(Keizo Shimizu)는 독특한 감각으로 옷을 입고 매일 매장을 찾아오던 십 대 소년 미야시타를 눈여겨보았고, 결국 그를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미야시타는 네펜데스에서 일하며 미국 현지 빈티지 의류를 바잉하고, 1960~70년대 아메리카나(Americana) 복식의 봉제 방식과 원단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패션 학원의 패턴 교육 대신 오래된 리바이스 청바지와 너덜너덜한 빈티지 스웨트를 가위로 분해하며 옷의 구조를 독학한 것입니다.

    이후 1996년, 미야시타는 자신의 회사 ‘쿡스(Kooks Co., Ltd.)’를 세우고 비틀즈의 실험적인 트랙 ‘Revolution 9’에서 이름을 따와 ‘넘버나인(Number (N)ine)’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저는 옷 만드는 법을 책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거리의 친구들, 그리고 밤새 듣던 록 음악이 저의 유일한 학교였습니다.”
    — 미야시타 타카히로

    ▲ 너바나의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Kurt Cobain), 넘버나인 미야시타 타카히로의 영원한 뮤즈
    ▲ 미야시타 타카히로와 넘버 (나)인의 주된 영감이 된 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2. 런웨이에 새겨진 그런지 록: 전설적인 컬렉션들

    넘버나인의 옷은 눈으로 보기 전에 귀로 먼저 듣는 옷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발표된 컬렉션들은 너바나(Nirvana)의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을 향한 애틋한 오마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Time Migration (2001 S/S)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2001년 봄/여름 시즌, 미야시타는 시간의 흐름을 옷에 투영한 ‘Time Migration’을 선보였습니다. 엠블럼이 새겨진 스웨트셔츠와 찢어진 패치워크 데님은 빈티지 록 티셔츠의 정서를 현대적인 실루엣으로 완벽하게 재해석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Touch Me I’m Sick ~ A New Morning (2003 S/S & A/W)

    많은 아카이브 컬렉터들이 넘버나인 역사상 가장 강렬한 쇼로 꼽는 시즌입니다. 당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미야시타는 두 시즌을 하나로 묶어 쇼를 열었습니다. 그런지 밴드 머드허니(Mudhoney)의 대표곡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이 컬렉션은 커트 코베인이 생전에 즐겨 입던 모헤어 줄무늬 카디건, 하트 눈물 프린트 티셔츠, 무릎에 덧댄 가죽 패치 진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쇼에 참여한 스태프 티셔츠 뒷면에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진의 이름을 적어 감사를 표했을 만큼, 디자이너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음악적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무대였습니다.

    2000년대 넘버나인 주요 아카이브 요약

    연도 및 시즌 컬렉션 타이틀 핵심 모티브 및 특징
    2001 S/S Time Migration 시간의 축적, 패치워크 데님, 록 밴드 엠블럼 스웨트
    2003 S/S & A/W Touch Me I’m Sick 머드허니 오마주, 그런지 모헤어 카디건, 하트 프린트
    2004 A/W Give Peace a Chance 파리 런웨이 데뷔, 반전(反戰) 메시지, 총알구멍 디테일
    2009 A/W A Closed Feeling 브랜드의 마지막 공식 컬렉션, 다크 아방가르드
    ▲ 커트 코베인이 착용한 오리지널 모헤어 카디건(MTV 언플러그드 전시 아카이브)
    ▲ 2003년 ‘Touch Me I’m Sick’ 런웨이 피날레

    3. 너덜너덜함 뒤에 숨은 집요한 장인정신

    겉보기에 넘버나인의 옷은 벼룩시장에서 주워 온 허름한 구제 옷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레이저로 태운 듯한 총알구멍(Bullet holes), 올이 풀려 흩날리는 밑단, 물이 빠진 체크 셔츠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옷을 뒤집어 안쪽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넘버나인은 겉모습의 그런지 룩을 구현하기 위해 일본 오카야마의 최고급 데님 장인들과 전통 테일러들의 봉제 기술을 철저하게 활용했습니다.

    재킷의 안쪽 솔기에는 미야시타의 시그니처인 ‘음표 모양의 바이어스 테이프(Musical note piping)’가 정교하게 둘러져 있었고, 입었을 때의 패턴은 몸의 곡선을 완벽하게 타고 흘렀습니다. 낡고 반항적인 서브컬처 디자인을 가장 엄격하고 결벽에 가까운 하이엔드 테일러링으로 마감한 것입니다. 빈티지의 무드와 오트 쿠튀르급 만듦새가 결합했기에, 넘버나인은 단순한 굿즈를 넘어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1993년 인 유테로(In Utero) 투어에서 파괴된 커트 코베인의 펜더 기타
    ▲ 전시관 쇼케이스에 진열된 커트 코베인의 펜더 머스탱 일렉트릭 기타

    4. 정상에서 선언한 해체, 그리고 더 솔로이스트(TheSoloist.)

    2004년 파리 맨즈 패션위크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커진 규모는 미야시타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상업적 요구와 대량 생산 시스템 속에서 그는 본래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순수한 옷과의 괴리를 느꼈습니다.

    결국 미야시타는 2009년 가을/겨울 ‘A Closed Feeling’ 컬렉션을 끝으로 전격적인 브랜드 탈퇴와 운영 중단을 선언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자신이 만든 상징을 스스로 내려놓은 셈입니다.

    이후 2010년, 그는 다시 혼자만의 작업실로 돌아와 ‘타카히로미야시타 더 솔로이스트(TAKAHIROMIYASHITATheSoloist.)’를 설립했습니다. 밴드를 떠나 솔로 뮤지션이 된 것처럼, 외부 자본이나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자기 내면의 우울과 록 스피릿을 의복으로 표현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솔로이스트에서 그는 더욱 실험적인 입체 패턴과 복잡한 디테일을 선보이며 타협 없는 작가주의 디자이너로 오늘날까지 굳건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상업적인 성공보다 자신의 순수한 취향과 고뇌를 솔직하게 옷에 새겼던 미야시타 타카히로. 록 음악이 거리에 울려 퍼지던 그 시절, 옷 한 벌에 청춘의 영혼을 통째로 쏟아부었던 넘버나인의 유산은 오늘날 아카이브 패션의 거대한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 1993년 무대 위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너바나(Nirvana)의 라이브 공연
    ▲ 1993년 10월 25일 미국 시카고 아라곤 볼룸에서 열린 너바나(Nirvana) 콘서트 티켓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1.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2. ARCHIVE.pdf, 『The Truth of Number (N)ine』 번역 아카이브 북클릿, 2009.
    3. Highsnobiety, 「The History of Takahiro Miyashita and Number (N)ine」 아카이브 피처.
    4. Truss Archive, 「Number (N)ine: An Overview of the Cult Fashion Brand」.
  •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와 우라하라 펑크: 이와нага 히카루가 시작한 아트 토이의 역사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와 우라하라 펑크: 이와нага 히카루가 시작한 아트 토이의 역사

    오늘날 아트 토이나 한정판 피규어 수집은 패션과 예술 애호가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취미가 되었습니다. 베어브릭이나 카우스(KAWS)의 컴패니언 피규어를 거실 한편에 오브제로 올려두는 일도 흔하죠.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장난감은 어디까지나 어린아이들의 완구이거나, 극소수 오타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상식을 뒤엎고 장난감에 거친 펑크 록의 반항심과 스트리트 패션의 감도를 불어넣은 브랜드가 바로 1995년 도쿄 하라주쿠에서 시작된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입니다. 브랜드의 수장 이와나가 히카루(Hikaru Iwanaga)는 세계 최초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직접 기획한 한정판 비닐 토이’를 선보이며 글로벌 아트 토이 씬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오늘은 하라주쿠의 펑크 키드였던 이와나가 히카루가 어떻게 빈티지 장난감을 스트리트 컬처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었는지, 그 유쾌하고 치열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세보 미군 기지 소년과 도쿄 섹스 피스톨즈

    이와나가 히카루의 독특한 취향은 그의 유년 시절에서 싹텄습니다. 1968년 나가사키현 사세보에서 태어난 그는 미 해군 기지에서 근무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를 접했습니다. 당시 미군 PX를 통해 들어온 지아이조(G.I. Joe) 피규어, 캡틴 크런치 시리얼 패키지, 스타워즈 장난감 등은 어린 히카루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미국 빈티지 토이에 대한 그의 지독한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입니다.

    성인이 되어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 진학한 그는 패션보다 음악과 펑크 록 문화에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훗날 언더커버(UNDERCOVER)를 설립한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입니다.

    음악 취향과 옷에 대한 열정이 꼭 맞았던 두 사람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섹스 피스톨즈를 커버하는 카피 밴드 ‘도쿄 섹스 피스톨즈(Tokyo Sex Pistols)’를 결성했습니다. 준 다카하시가 조니 로튼 역할을 맡아 ‘조니오’라는 별명을 얻었고, 히카루 역시 무대 위에서 거친 에너지를 뿜어내며 하라주쿠 서브컬처 씬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이들이 보여준 반항적이고 자유분방한 펑크 정신은 훗날 바운티 헌터라는 브랜드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Bounty Hunter 설립자 이와나가 히카루
    ▲ 이와나가 히카루

    1995년 하라주쿠, 현상금 사냥꾼의 아지트가 열리다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뒤 도쿄의 유명 록 DJ 오누키 켄쇼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히카루는, 주변 동료들의 격려에 힘입어 1995년 하라주쿠 뒷골목에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 매장의 이름이 바로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였습니다. 평소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보바 펫(Boba Fett)’을 좋아했던 히카루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초기 바운티 헌터는 옷 가게라기보다는 히카루가 미국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수집해 온 빈티지 아메리칸 토이와 1970년대 펑크 밴드 티셔츠를 파는 편집숍에 가까웠습니다. 매장 진열장에는 그가 모은 빈티지 스타워즈 피규어와 빈티지 식료품 캐릭터 인형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거친 펑크 록이 흘러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인근에서 ‘노웨어(NOWHERE)’를 열고 우라하라 붐을 일으키던 준 다카하시와 니고(NIGO), 후지와라 히로시 등도 수시로 바운티 헌터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서브컬처에 목말라 있던 하라주쿠의 청년들에게 바운티 헌터는 단순한 옷가게를 넘어 취향을 공유하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시기 주요 사건 의미
    1980년대 후반 준 다카하시와 ‘도쿄 섹스 피스톨즈’ 결성 하라주쿠 펑크 서브컬처의 중심 인물로 부상
    1995년 하라주쿠에 ‘바운티 헌터’ 매장 오픈 미국 빈티지 토이와 펑크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아지트 형성
    1997년 첫 오리지널 피규어 ‘키드 헌터’ 출시 세계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소프트 비닐 피규어 탄생
    1999년 KAWS 최초의 ‘컴패니언’ 피규어 공동 기획·제작 글로벌 아트 토이 씬을 폭발시킨 역사적 협업
    Bounty Hunter 90년대 COOL TRANS 매거진 아카이브

    소프비 혁명: ‘키드 헌터’와 ‘스컬 쿤’의 탄생

    매장을 운영하던 히카루는 점차 미국산 빈티지 완구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입체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1997년, 하라주쿠의 천재 그래픽 디자이너 스케이트씽(Skate Thing)과 손을 잡고 역사적인 첫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그 피규어가 바로 세일러복을 입은 반항적인 소년 캐릭터 ‘키드 헌터(Kid Hunter)’였습니다. 히카루는 일본 전통의 장난감 제조 방식인 소프트 비닐(소프비, Soft Vinyl) 공법을 사용해 이 캐릭터를 실물로 구현했습니다.

    초기 키드 헌터는 바운티 헌터의 오리지널 티셔츠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소량 제공되거나 한정 판매되는 일종의 머천다이징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 펑크 감성이 묻어나는 장난꾸러기 조형은 패션 피플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출시 직후 매장 앞에는 피규어를 구하려는 인파가 길게 줄을 섰고, 준비된 물량은 순식간에 동이 났습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이와나가 히카루는 턱뼈가 도드라진 해골 모티프의 시그니처 캐릭터 ‘스컬 쿤(Skull Kun)’을 선보였습니다. 반항기 넘치는 해골 조형에 펑크 밴드의 에너지를 녹여낸 스컬 쿤은 바운티 헌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어른들이 열광하는 장난감’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단단하게 개척했습니다.

    “장난감은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 우리가 입는 옷,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가 하나의 입체물로 표현된 결과물입니다.”

    Bounty Hunter 오리지널 스컬 쿤(Skull-Kun) 소프비 피규어
    ▲ 바운티 헌터와 디즈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스컬 쿤 미키’ 피규어와 패키지 상자

    카우스(KAWS)를 3차원으로 소환한 서브컬처의 기린아

    바운티 헌터가 일궈낸 소프트 비닐 토이의 성공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시선까지 끌어당겼습니다.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은 바로 뉴욕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카우스(KAWS)와의 만남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 자신만의 시그니처 ‘X’자 눈 캐릭터를 덧그리는 서브버타이징(Subvertising)으로 이름을 알리던 카우스는 일본 스트리트 씬과의 교류를 위해 도쿄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2차원 평면 작업 위주로 활동하던 카우스의 작업물을 눈여겨본 이와나가 히카루와 리얼매드 헥틱(realmad HECTIC) 팀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집니다. 바로 그 평면 캐릭터를 입체 장난감으로 제작해 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결과 1999년, 카우스 역사상 최초의 소프트 비닐 피규어인 ‘컴패니언(Companion)’이 바운티 헌터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단 500점 한정으로 제작된 이 첫 컴패니언 피규어는 하라주쿠 매장에서 발매되자마자 전량 매진되었고, 현재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아카이브 피스가 되었습니다. 히카루의 집요한 장난감 사랑이 훗날 전 세계 현대미술계를 뒤흔든 거장의 첫 발걸음을 직접 이끌어낸 셈입니다.

    바운티 헌터는 카우스 외에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자비스(James Jarvis), 미국의 전설적인 록 포스터 아티스트 프랭크 코직(Frank Kozik) 등과 협업하며 전 세계 서브컬처 아티스트들의 그래픽을 피규어로 전환하는 산파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1999년 Bounty Hunter 협업으로 탄생한 KAWS Companion
    ▲ 야외 조각 공원에 전시된 카우스(KAWS)의 대형 컴패니언 조각상

    옷과 장난감의 경계를 지운 우라하라의 유산

    바운티 헌터가 패션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머천다이징의 위상을 예술과 문화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 의류 브랜드가 장난감을 제작한다는 것은 단순한 판촉용 사은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나가 히카루는 티셔츠와 라이더 재킷, 그리고 소프비 토이를 대등한 가치를 지닌 ‘수집품(Collectible)’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한정판 드롭 방식과 수집 문화를 자극하는 패키징 디자인은 이후 메디콤 토이의 베어브릭 열풍, 나이키의 한정판 스니커즈 문화, 그리고 슈프림의 기상천외한 액세서리 라인업으로 이어지는 스트리트웨어 머천다이징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결성했던 펑크 밴드, 그리고 어릴 적 장난감이 좋아서 차렸던 하라주쿠의 작은 골목 가게. 타인의 기준 대신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쫓았던 펑크 키드 이와나가 히카루의 뚝심은, 오늘날 우리가 스트리트 컬처와 현대미술을 소비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1.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2. Ivan Vartanian, Akio Iida, Lesley A. Martin, 『Full Vinyl: The Subversive Art of Designer Toys』, Collins Design, 2006.
    3. Sabukaru Online, 「A Toy Revolution: The Story of Hikaru Iwanaga and Bounty Hunter」, Archive Article, 2023.
    4. Toypunks Documentary Series, Vol. 1, Directed by Michael Coleman, 2007.
  • 소프넷(SOPHNET.)과 F.C.R.B. 브랜드 역사: 기요нага 히로후미가 만든 가상의 축구팀

    소프넷(SOPHNET.)과 F.C.R.B. 브랜드 역사: 기요нага 히로후미가 만든 가상의 축구팀

    화려한 그래픽의 시대, 홀연히 등장한 미니멀리즘

    1990년대 후반 도쿄 하라주쿠 골목길은 그야말로 원색의 그래픽 티셔츠와 큼직한 로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에이프(A Bathing Ape)나 언더커버(UNDERCOVER) 같은 브랜드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스트리트 웨어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었죠. 그런데 1998년, 이 시끌벅적한 골목 한편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기요나가 히로후미(Hirofumi Kiyonaga)였습니다.

    기요나가는 브랜드를 만들기 전, 프랑스 브랜드 A.P.C.의 도쿄 디스트리뷰터에서 일하며 스토어 매니저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A.P.C.의 수장 장 투이투(Jean Touitou) 밑에서 일하며 그가 배운 건 분명했습니다. 겉보기만 화려한 유행을 쫓기보다는 매일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본연의 기본기와 정갈함이 더 오래간다는 사실이었죠.

    기요나가는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접어들던 스트리트 1세대 친구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화려한 그래픽 티셔츠를 입고 밤거리를 누비던 이들도 나이를 먹고 직장을 다니며 조금 더 단정하고 성숙한 옷을 찾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1998년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소프(SOPH., 2002년 SOPHNET.으로 개명)’였습니다.

    ▲ SOPHNET.과 F.C.R.B.를 설립하며 가상 축구팀 문화를 창조한 기요나가 히로후미
    ▲ SOPHNET.과 F.C.R.B.를 설립하며 가상 축구팀 문화를 창조한 기요나가 히로후미

    일상복에 기능성 아웃도어를 녹여내다

    소프넷이 던진 출사표는 명확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정갈하고 세련된 일상복’이었죠.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실루엣에 기요나가는 아주 영리한 요소를 결합했습니다. 바로 고어텍스(GORE-TEX)나 쿨맥스(COOLMAX) 같은 아웃도어·스포츠 테크니컬 기능성 원단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셔츠나 슬랙스에 방수, 통기성 소재를 쓰는 게 흔한 일이지만, 90년대 말에는 대단히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한 치노 팬츠나 집업 재킷인데, 비가 오는 날에도 쾌적하게 입을 수 있고 통풍이 잘되는 옷이었으니까요. 거리의 자유분방한 감성을 간직한 채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직장인들에게 소프넷은 더할 나위 없는 대안이 되었습니다.

    구분 90년대 후반 우라하라 스트리트웨어 초기 SOPH. (소프넷)
    디자인 콘셉트 대형 그래픽, 눈에 띄는 로고 플레이 미니멀리즘, 절제된 디테일
    주요 소재 전통적인 면(Cotton), 헤비웨이트 스웨트 고어텍스, 쿨맥스 등 기능성 테크 원단
    지향점 하위문화 기반의 유스 컬처 어른들을 위한 성숙한 데일리 웨어

    가상의 축구팀 ‘F.C. Real Bristol’의 탄생

    브랜드가 자리를 잡아가던 1999년, 소문난 축구광이었던 기요나가는 머릿속에 품고 있던 기발한 장난을 현실로 옮기기로 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가 다가오면서 일본 전역에 축구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기요나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직접 프로 축구 구단을 운영할 수는 없지만, 가상의 축구팀을 만들고 그 팀의 유니폼과 선수단 일상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가상 축구 클럽, ‘F.C. Real Bristol(이하 F.C.R.B.)’이 탄생했습니다. 클럽 엠블럼을 만들고, 팀의 트레이닝복과 웜업 재킷, 서포터즈를 위한 티셔츠를 정식 컬렉션으로 디자인해 발표했죠. 축구 경기장에서 입는 옷을 스트리트 패션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오늘날 유행하는 ‘블록코어(Blokecore)’의 진정한 조상 격 기획이었습니다.

    ▲ 가상의 축구 클럽 엠블럼과 테크니컬 기능성을 결합한 F.C. Real Bristol(F.C.R.B.) 오리지널 컬렉션
    ▲ 가상의 축구 클럽 엠블럼과 테크니컬 기능성을 결합한 F.C. Real Bristol(F.C.R.B.) 오리지널 컬렉션

    스포츠 공룡 나이키의 기막힌 스폰서십

    F.C.R.B.의 프로젝트가 패션계의 이목을 끈 결정적인 계기는 2000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Nike)의 등장이었습니다. 나이키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 가상의 축구 클럽과 공식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나이키는 F.C.R.B.의 정식 유니폼과 트레이닝 웨어에 자사의 기술력(Dri-FIT 등)과 공식 스우시(Swoosh) 로고를 넣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을 후원하던 나이키가 도쿄의 작은 패션 브랜드가 만든 가상 팀의 가슴팍에 스우시를 달아준 것이죠. 이는 스포츠 비즈니스와 스트리트 패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전무후무한 발상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룩북 연출이었습니다. 가상의 팀이다 보니 계약된 실제 선수가 없었죠. 기요나가는 사람 모델 대신 정교하게 제작된 축구선수 마네킹(더미)을 세워두고 룩북을 촬영했습니다. 무표정한 마네킹이 나이키 스우시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잔디밭에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F.C.R.B.만의 독특한 서브컬처 유머를 보여주었습니다.

    ▲ F.C. Real Bristol 엠블럼이 적용된 올리브 카키 컬러의 셋업을 착용한 룩북 모델
    ▲ F.C. Real Bristol 엠블럼이 적용된 올리브 카키 컬러의 셋업을 착용한 룩북 모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요나가의 유산

    기요나가 히로후미가 SOPH.와 F.C.R.B.를 통해 보여준 건 단순히 예쁜 옷이 아니었습니다. ‘패션이란 옷을 파는 것을 넘어, 즐거운 세계관과 가상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놀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증명한 셈이었죠.

    이후 그는 후지와라 히로시와 함께 유니폼 익스페리먼트(uniform experiment)를 전개하고, 일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숍 문화를 이끌며 도쿄 패션의 한 축을 든든하게 지켰습니다. 2022년 기요나가는 SOPH.의 디렉터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지만, 그가 20여 년 전 던진 유쾌한 상상은 여전히 전 세계 패션 애호가들의 옷장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Hypebeast, “‘Breaking Bread’ with SOPH.’s Hirofumi Kiyonaga”, Hypebeast Video Interview, 2020.
    • Sabukaru Online, “When SOPHNET and Nike created the world’s first fictional Football team: FCRB”, Fashion Archive, 2022.
    • SoccerBible, “The History of F.C. Real Bristol: Football Culture Meets Streetwear”, Culture Feature,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