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KAPITAL) 브랜드 역사와 아카이브: 오카야마 데님 장인들이 만든 보로·반다나의 기적

▲ 캐피탈(KAPITAL) 시그니처 빈티지 반다나 패치워크 1st 타입 자켓

작성자

카테고리:

오카야마현 남쪽의 작은 항구 도시 고지마(児島). 오늘날 빈티지 데님 매니아들에게는 성지로 통하는 이곳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캐피탈(KAPITAL)입니다.

리바이스의 옛 원단을 똑같이 재현하는 완벽한 복각(Reproduction)이 일본 데님계의 절대적인 미덕으로 통하던 시절, 캐피탈은 낡은 천을 덧대어 꿰맨 에도 시대의 누더기 옷 ‘보로(Boro)’와 뼈다귀(Skeleton) 자수를 들고 나왔습니다. 미국 워크웨어의 모방에 머물지 않고, 일본 고유의 전통 민예와 자유로운 히피 정신을 결합해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한 히라타 가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편안하게 들려드립니다.

1. 가라테 사범과 45rpm 디자이너: 히라타 부자의 만남

캐피탈의 역사는 창립자 히라타 토시키요(平田俊清)로부터 시작됩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가라테를 가르치던 그는 그곳에서 50~60년대 빈티지 아메리칸 데님을 접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낡아갈수록 멋이 살아나는 인디고 원단의 매력에 매료된 그는 1984년 귀국하여 일본 섬유 생산의 중심지였던 오카야마 고지마에 작은 봉제 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듬해인 1985년, ‘일본 데님의 수도(Capital)’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담아 세운 브랜드가 바로 캐피탈(KAPITAL)이었습니다. 초기 캐피탈은 오카야마의 뛰어난 봉제와 염색 기술을 바탕으로 유명 브랜드들의 OEM(위탁 생산)을 맡으며 탄탄한 기술력을 다져나갔습니다.

시기 주요 역사 및 변곡점
1984~1985년 히라타 토시키요, 오카야마 고지마에 봉제 공장 설립 및 ‘캐피탈’ 창립
2002년 아들 히라타 키로 합류, 브랜드 리브랜딩 시작
2010년 특수 염색·가공 아틀리에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 설립
2013년 첫 번째 ‘보로(Boro)’ 트러커 자켓 출시 및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 원단 협력

브랜드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도쿄의 유명 인디고 캐주얼 브랜드 ’45rpm(현 45R)’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들 히라타 키로(平田和宏)가 고향 고지마로 돌아와 아버지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빈티지 데님의 완벽한 복각과 기술적 토대를 완성하셨다면, 제 역할은 그 위에 아무도 보지 못한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에 집착하는 완고한 장인 아버지와, 예술적 감각과 해체주의적 시각을 지닌 아들의 결합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캐피탈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빚어내기 시작했습니다.

▲ 캐피탈(KAPITAL) 시그니처 빈티지 반다나 패치워크 1st 타입 자켓
▲ 캐피탈(KAPITAL)의 시그니처 반다나 패치워크 재킷

2. ‘보로(Boro)’와 사시코: 누더기 천을 하이엔드 예술로 바꾸다

캐피탈의 시그니처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보로(Boro, ぼろ)’입니다. 보로는 본래 일본 도호쿠 지방 등 추운 북부 지역의 가난한 농어민들이 거친 무명천이나 삼베 옷이 해어질 때마다 남은 천 조각을 덧대고 꿰매 대를 이어 입던 전통 누더기 옷을 뜻합니다. 솜이 귀하던 시절 옷감을 두껍게 만들어 추위를 견디기 위해 흰 실로 촘촘히 누비던 바느질 기술이 바로 ‘사시코(刺し子)’입니다.

한때 가난의 상징이자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되어 버려지던 보로를, 키로 히라타는 가장 일본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한 텍스타일 아트로 바라보았습니다. 캐피탈은 옛 원단 조각들을 모으고, 이를 현대적인 1st 타입 데님 트러커 자켓 위에 사시코 스티치와 함께 패치워크로 재구성했습니다.

2013년, 당시 루이비통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킴 존스(Kim Jones)는 캐피탈의 보로 작업물에 깊은 영감을 받아 원단 협력을 요청했고, 같은 해 캐피탈은 자체 라인으로 전설적인 ‘보로 자켓’을 출시했습니다. 서로 다른 톤의 인디고 조각들이 수십 번의 워싱과 핸드메이드 바느질을 거치며 빚어내는 질감은 옷이라기보다 한 편의 추상화에 가까웠습니다. 100년을 입을 수 있도록 사시코 자수를 전면에 촘촘히 채워 넣은 ‘센츄리 데님(Century Denim)’ 역시 이러한 장인정신에서 탄생한 걸작입니다.

▲ 일본 에도·메이지 시대의 전통 보로(Boro) 인디고 사시코 패치워크 섬유
▲ 다양한 인디고 패치워크와 사시코 자수로 완성된 전통 보로(Boro) 직물 디테일

3.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 장인정신과 워싱 가공의 비밀

캐피탈의 옷들이 일반적인 워크웨어와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오카야마 현지에 구축한 자체 가공 아틀리에 ‘카운트리(KOUNTRY)’에 있습니다. 고지마의 맑은 용수와 전통 염색 장인들이 모여 있는 이 공장은 캐피탈의 실험실 역할을 합니다.

카운트리 공장에서는 옷을 완성한 뒤 일부러 칼집을 내고, 흙과 돌을 넣어 수십 시간씩 워싱을 돌리며, 찻잎, 감즙(카키시부), 진흙(도록조메), 천연 인디고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염색합니다. 대량 생산 공장에서는 흠집이나 불량으로 여겨질 법한 얼룩과 뜯김을 시간의 흔적을 담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곳입니다.

자연스러운 빈티지 가공을 넘어, 히피적인 패치워크와 반다나 패턴의 해체, 그리고 동양적인 실루엣의 결합은 카운트리 장인들의 손끝을 거치며 독보적인 ‘캐피탈 룩’으로 완성됩니다.

▲ 캐피탈 카운트리(KOUNTRY) 팩토리의 정교한 빈티지 디스트로이드 가공 자켓
▲ 캐피탈(KAPITAL)의 반다나 패치워크 재킷

4. 스켈레톤과 스마일: 글로벌 스트리트 컬처를 뒤흔들다

아메카지(아메리칸 캐주얼)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공유되던 캐피탈이 전 세계 유스 컬처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는 뜻밖의 모티프들이었습니다. 바로 등판을 가득 채운 스켈레톤(뼈다귀) 자수와 발뒤꿈치나 팔꿈치에 위트 있게 박힌 스마일(Smiley) 로고입니다.

정교한 퀼팅과 사시코 기법으로 인체의 척추와 갈비뼈를 수놓은 본(Bone) 자켓과 니트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과 1960년대 미국의 사이키델릭 히피 문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통 장인 기술에 위트와 서브컬처적 반항심을 섞어 넣은 이 디자인은 2010년대 후반 글로벌 패션 신을 강타했습니다.

패션 아이콘 에이셉 라키(A$AP Rocky)가 캐피탈의 본 플리스와 데님 자켓을 걸치고 뮤직비디오와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불이 붙었습니다. 트래비스 스캇, 존 메이어, 퍼렐 윌리엄스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앞다투어 고지마의 외딴 매장과 도쿄 에비스 매장을 찾아 옷을 사 모았고, 리셀 시장에서는 정가의 몇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 글로벌 패션 신을 강타한 캐피탈의 아방가르드 패치워크와 페인팅 룩북
▲ 반다나 패치워크 반소매 셔츠와 페인트 스플래터 팬츠를 착용한 스트리트 스타일링

5. 과거를 베끼지 않고 미래의 빈티지를 만들다

일본의 수많은 데님 브랜드들이 1940~50년대 미국의 빈티지 리바이스를 1인치당 바늘 땀수까지 똑같이 재현하는 데 몰두할 때, 캐피탈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옷이 과연 백 년 뒤에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빈티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캐피탈은 미국의 옷을 그대로 베끼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오카야마의 봉제와 염색 기술 위에, 일본 농민들의 생존 기술이었던 보로를 얹고, 여기에 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자유분방함을 섞었습니다. 서양의 문화를 동양의 기술로 재해석해 다시 서양의 젊은 세대를 열광하게 만든 것입니다.

한 벌의 낡은 옷에 깃든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흠집조차 개성으로 끌어안는 캐피탈의 옷들. 완벽함보다 불완전함 속의 따뜻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철학이야말로 오늘날 정형화된 패션계에서 캐피탈이 여전히 독보적인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1.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2. GQ Magazine, “How Kapital Became the Coolest Cult Brand in Japan” (Interview with Kiro Hirata).
  3. Heddels Archive, “Kapital – History, Philosophy, and Iconic Products”, 2018.
  4. Louis Vuitton Official Archive, “Spring/Summer 2013 Menswear Collection by Kim Jones”.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