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빔(visvim) 헤리티지와 FBT: 에릭 클랩튼·존 메이어가 나카무라 히로키에 반한 이유

▲ 비즈빔(Visvim)을 대표하는 커치프 반다나 다운 자켓(Kerchief Dow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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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보드 디자이너가 만든 이상한 신발, 비즈빔의 시작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바로 ‘비즈빔(Visvim)’입니다. 티셔츠 한 장에 수십만 원, 코트나 재킷은 수백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 브랜드이지만, 로고를 크게 드러내지도 화려한 파티를 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의 수많은 패션 애호가들과 아티스트들은 왜 이 브랜드에 그토록 열광할까요?

이야기는 비즈빔의 설립자 나카무라 히로키(Hiroki Nakamura)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쿄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해외를 자주 여행했고, 10대 시절에는 미국 알래스카로 훌쩍 떠나 스노우보드를 타고 캠핑을 즐기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알래스카 대자연 속에서 원주민들의 실용적인 복식과 빈티지 아메리카나(Americana) 문화를 직접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죠.

이후 그는 세계적인 스노우보드 브랜드인 ‘버튼(Burton Snowboards)’에서 8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혹독한 눈밭을 견뎌내는 고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며 첨단 소재와 기능성에 통달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대량 생산되는 합성 섬유 옷들은 새것일 때 가장 멋지고, 시간이 흐르면 낡아서 버려질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입을수록 사람의 손때가 묻고, 세월과 함께 더 깊은 멋을 내는 물건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는 2001년 회사를 나와 도쿄에서 독립 브랜드 ‘비즈빔’을 세웠습니다. 브랜드 이름조차 거창한 뜻이 아니라, 라틴어 사전의 ‘V’ 섹션을 넘기다 힘과 에너지를 뜻하는 ‘vis’와 ‘vim’ 두 단어의 형태감이 마음에 들어 붙인 것이었습니다.

▲ 비즈빔(Visvim)을 대표하는 커치프 반다나 다운 자켓(Kerchief Down Jacket)
▲ 반다나 패턴 다운 패딩 재킷을 착용한 모델

FBT 모카신,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에 비브람을 덧대다

초기 비즈빔을 전 세계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는 옷이 아닌 신발이었습니다. 2001년 말과 2002년 초, 나카무라 히로키는 자신의 멘토이자 우라하라 스트리트 씬의 대부였던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1980년대 영국의 뉴웨이브 팝 밴드 ‘펀 보이 쓰리(Fun Boy Three)’의 LP 앨범 커버를 건네며, 멤버 테리 홀이 신고 있는 독특한 원주민풍 신발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감에서 출발해 밴드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 지은 신발이 바로 전설적인 ‘FBT’입니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북미 원주민들이 사슴 가죽으로 발을 감싸 만들던 전통 모카신에 주목했습니다.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스웨이드 프린지와 구슬 장식은 전통 수작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되, 밑창에는 이탈리아 비브람(Vibram)사의 첨단 고무 밑창과 EVA 미드솔을 결합했습니다. 전통 신발의 편안함과 현대 운동화의 쿠셔닝을 절묘하게 섞어낸 이 하이브리드 슈즈는 당시 스트리트웨어 씬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대기업 스니커즈에 익숙했던 젊은이들에게 천연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카신 스니커즈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였습니다.

▲ 빈티지 패브릭과 수작업 디테일이 집약된 비즈빔 인디고 반다나 셔츠
▲ 다양한 인디고 패치워크 원단을 조합해 제작된 비즈빔의 셔츠 재킷

진흙 염색부터 사시코까지, 지구상 가장 번거로운 제작 방식

신발의 성공 이후 나카무라 히로키는 의류 라인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패션계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효율성과 원가 절감을 최고로 치는 현대 의류 산업에서, 그는 정반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 공예 기술을 고집했습니다.

  • 아마미오시마의 진흙 염색 (도로조메, 泥染め): 일본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섬에서 1,3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 염색 기법입니다. 테치키(차륜매) 나무를 삶은 즙으로 옷감을 물들인 뒤, 미네랄이 풍부한 섬의 진흙 논에 원단을 넣고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주무릅니다. 식물 탄닌과 진흙의 철분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화학 염료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매트한 흑갈색이 완성됩니다.
  • 천연 인디고와 코치닐 염색: 합성 화학 염료 대신 식물성 쪽(Natural Indigo)과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 코치닐(Cochineal)을 사용합니다. 손으로 여러 번 담그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얻어낸 색감은 햇빛과 마찰을 겪으며 사용자만의 독특한 색 바램을 만듭니다.
  • 전통 누비 자수 ‘사시코(Sashiko)’와 패치워크: 에도 시대 농민들이 해진 옷을 오래 입기 위해 천을 덧대고 촘촘하게 손바느질하던 사시코 기법을 현대적인 재킷과 아우터에 적용했습니다. 100년 된 빈티지 원단을 해체해 한 땀 한 땀 손으로 이어 붙이기도 합니다.
비즈빔의 핵심 전통 공예 제작 지역 및 기법 시각적·기능적 특징
도로조메 (Mud Dye) 일본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섬의 진흙 논 철분 반응을 통한 차분하고 깊은 흑갈색 톤과 항균 효과
천연 인디고 (Aizome) 도쿠시마현 등 전통 쪽 염색 장인 수작업 입을수록 마찰 부위가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경년변화
사시코 (Sashiko) 일본 고유의 손바느질 누비 공예 원단의 내구성을 높이고 수작업 특유의 따뜻한 질감 제공
FBT 모카신 구조 북미 원주민 모카신 + 이탈리아 비브람 솔 전통 가죽 공예의 착화감과 현대 스니커즈의 접지력 결합
▲ 도쿄 부도칸에서 공연 중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밴드

에릭 클랩튼과 존 메이어가 열광한 이유, ‘미래의 빈티지’

비즈빔의 매장 F.I.L.(Free International Laboratory)에는 화려한 조명 대신 자연광이 들어오고, 은은한 인센스 향과 나무 냄새가 맴돕니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자신의 옷을 두고 ‘미래의 빈티지(Future Vintage)’라고 부릅니다. 50년 뒤, 100년 뒤 빈티지 숍의 옷걸이에 걸려 있어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진심 어린 고집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었습니다. 기타의 전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비즈빔의 초창기부터 열렬한 팬이 되어 공연 때마다 비즈빔의 셔츠와 재킷을 즐겨 입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John Mayer)는 스스로를 ‘비즈빔 덕후’라 부르며 수억 원대의 비즈빔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콘서트 무대에 천연 염색 노라기(Noragi) 재킷을 입고 올라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화려한 로고를 내세워 부를 과시하는 명품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시간과 습관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으로 완성되는 과정 때문입니다.

스노우보드 디자이너였던 한 청년이 원주민의 지혜와 사라져가던 장인들의 손길을 엮어 만들어낸 비즈빔. 빠른 유행과 패스트패션이 넘쳐나는 오늘날, 비즈빔이 보여주는 묵직한 발걸음은 진짜 럭셔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비즈빔의 열렬한 수집가 존 메이어(John Mayer)
▲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는 존 메이어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Visvim Official Dissertation Series, “Concept of visvim & Future Vintage”, Visvim TV Archive.
  • The Business of Fashion (BoF), “Hiroki Nakamura: The BoF 500 Profile & Interview”, BoF Archive.
  • Grailed Master Class, “Visvim Visions: The Brand Hiroki Nakamura Built”, Grailed Cultural Archiv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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