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하라(Ura-Harajuku) 아카이브 패션의 역사: 거대 자본이 삼킨 골목과 90년대 빈티지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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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아끼는 빈티지 티셔츠나 오래된 스니커즈 한 켤레쯤 있으신가요? 요즘 글로벌 패션 플랫폼이나 빈티지 편집숍을 둘러보다 보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을 자주 마주칩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매된 베이프(A Bathing Ape)의 초기 카모 후디나 언더커버(Undercover)의 90년대 티셔츠 한 장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광경이죠.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쿄 하라주쿠의 좁은 뒷골목 단칸 가게에서 몇천 엔에 팔리던 옷들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스트리트웨어의 전설을 썼던 우라하라(裏原宿, Ura-Harajuku)는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 뜨거웠던 열기는 왜 식어버렸고, 골목 매장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는 왜 다시 그 시절의 아카이브에 열광하는 걸까요? 그 숨은 비하인드를 조곤조곤 풀어보겠습니다.

1. 골목의 열기가 식어가던 순간: 2000년대 후반의 변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라하라는 매주 주말마다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던 곳이었습니다. 번듯한 간판도 없는 작은 편집숍 ‘노웨어(NOWHERE)’나 ‘에이프(Ape)’ 매장 앞에는 신제품 발매 전날 밤부터 수백 명의 젊은이가 골목길 바닥에 줄을 서서 밤을 지새웠죠. 잡지에 실린 작은 사진 한 컷,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소식을 좇아 모여든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골목의 낭만에도 서서히 균열이 찾아왔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브랜드 자체의 과도한 확장이었습니다. 우라하라 특유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소량으로 구해 입는 희소성’에 있었는데,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매장이 전국 단위로 늘어나고 제품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골목 특유의 비밀스러운 공기가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희소성이 희석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유행에 민감한 거리의 청년들이었죠.

시기 우라하라 문화의 주요 변화 흐름
1990년대 중반 노웨어 오픈, 잡지 기반의 팬덤 형성 및 소량 생산 고수
2000년대 초반 미국 힙합 씬 유입, 글로벌 셀럽 착용으로 전 세계적 붐
2000년대 후반 생산량 급증, 패스트패션 유입 및 원조 골목 매장들의 폐점
2010년대 이후 온라인 플랫폼(Grailed 등) 중심의 아카이브 재조명 및 복각 열풍
▲ 잡지 화보에서 아나킥 어드저스트먼트 의류를 착용한 후지와라 히로시.
▲ 잡지 화보에서 아나킥 어드저스트먼트 의류를 착용한 후지와라 히로시.
사진: Vast Ozone Studio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2. 거대 자본의 공습과 우라하라의 작별

2008년과 2009년, 하라주쿠 메이지 거리에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H&M과 포에버21(Forever 21) 같은 글로벌 패스트패션 공룡들이 거대한 매장을 잇달아 오픈한 것입니다. 수만 원대에 트렌디한 옷을 매주 쏟아내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공세 속에서, 수십만 원대의 인디 스트리트웨어를 고집하던 골목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까지 겹쳤습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소규모 독립 편집숍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그 빈자리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기업형 매장들이 채웠습니다. 우라하라의 상징이었던 브랜드들도 독립적인 경영을 이어가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2011년, 니고(NIGO)는 베이프의 운영사 노웨어(Nowhere Co., Ltd.) 지분 대부분을 홍콩의 거대 패션 유통 기업 I.T 그룹에 매각하게 됩니다. 골목길의 순수한 DIY 정신으로 시작했던 우라하라 1세대가 거대 글로벌 자본의 품에 안기며 사실상 한 시대의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우라하라의 시작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던 순수한 놀이였습니다.”
— 당시 우라하라 씬을 회고하는 패션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고(NIGO).
▲ 2006년 태국 방콕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고(NIGO).
사진: Sry85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3. 온라인에서 다시 피어난 ‘아카이브 패션’

골목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유산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부활했습니다. 바로 201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이었습니다. 미국의 그레일드(Grailed) 같은 전문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의류들이 ‘아카이브 패션(Archive Fashion)’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열풍을 주도한 주역들이 당시 우라하라를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생 소비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거 일본 패션 잡지인 『보물섬(타카라지마)』이나 『아사얀(ASAYAN)』의 스캔본을 접한 이들은, 지금의 찍어내듯 정형화된 스트리트웨어와는 전혀 다른 90년대 도쿄 골목의 밀도 높은 디자인에 매료되었습니다.

▲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입구에 오가는 인파의 모습.
▲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입구에 오가는 인파의 모습.
사진: japanvlogjp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4. 수천만 원에 팔리는 90년대 티셔츠의 비밀

그렇다면 왜 전 세계 컬렉터들은 30년 된 헌 옷에 수백, 수천만 원을 아낌없이 지불할까요? 단순히 ‘오래된 빈티지’라서가 아닙니다.

첫째, 타협 없는 만듦새입니다.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가 이끌던 90년대 언더커버의 제품들은 펑크 록 정신을 바탕으로 원단을 일일이 손으로 찢고 다시 꿰매는 해체주의적 공정을 거쳤습니다. 대량생산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오트 쿠튀르적 디테일이 살아있었죠. 둘째, 대체 불가능한 ‘원형(Originality)’의 가치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이 선보이는 수많은 스트리트 협업의 뿌리가 바로 당시 우라하라에 있습니다. 컬렉터들에게 90년대 초판 제품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현대 남성복 역사의 중요한 ‘문화재’로 인식되는 셈입니다.

5. 우리는 왜 30년 전 도쿄 골목길을 다시 찾는가?

오늘날의 패션은 스마트폰 화면 터치 몇 번으로 전 세계 신상품을 다음 날 집 앞 배송으로 받아보는 초연결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발매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옷을 쉴 새 없이 추천하죠.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잡지 구석의 작은 주소를 보고 지도를 뒤져 찾아가던 설렘, 컴컴한 매장 문을 열 때의 긴장감, 그리고 같은 음악과 문화를 공유하던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며 줄을 서던 그 시절의 공기 말입니다.

지금 불고 있는 복각 열풍과 아카이브 수집 열기는 어쩌면 모든 것이 빠르고 투명해진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발로 뛰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진짜 낭만’을 되찾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풍경 아닐까요?

▲ 도쿄에 위치한 JR 하라주쿠역 신역사 건물 외관.
▲ 도쿄에 위치한 JR 하라주쿠역 신역사 건물 외관.
사진: Tokuzo in Edomur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Takarajima Sha, 『Street Jack』 & 『Boon』 1990s Fashion Magazine Archives.
  • Hypebeast & Grailed Historical Archive: “A History of Ura-Harajuku Movement”, 2017.
  • I.T Group Official Press Release: “Acquisition of Nowhere Co., Ltd.”, February 2011.
  • Fashion Press Japan, 「裏原宿カルチャーの軌跡と変遷」,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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