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뉴욕 라파예트 스트리트, 스케이터들의 아지트
1994년 4월, 미국 뉴욕 소호 외곽의 한적한 라파예트 스트리트(Lafayette Street)에 작은 옷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에는 붉은색 직사각형 바탕에 흰색 볼드체로 ‘Supreme’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죠.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원래 영국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와 배터리 파크 벼룩시장에서 옷을 팔았고, 이후 전설적인 편집숍 유니언(Union)과 스투시(Stüssy) 뉴욕 매장을 운영하며 다운타운의 유스 컬처를 온몸으로 흡수했습니다.
당시 제비아가 슈프림을 연 목적은 거창한 패션 제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뉴욕에는 거친 도로를 누비는 로컬 스케이터들이 편하게 모여 음악을 듣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드물었습니다. 제비아는 매장 바닥을 넓게 비워 스케이터들이 보드를 탄 채 들어올 수 있게 설계했고, 실제 거리의 스케이터들을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뉴욕 서브컬처의 생생한 에너지가 그대로 응축된 장소였죠.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작은 뉴욕 매장에서 팔리는 그래픽 티셔츠와 후디에 가장 먼저 뜨겁게 반응한 이들은 뉴욕 시민만이 아니었습니다. 태평양 건너 일본 도쿄에서 날아온 패션 바이어들과 여행자들이었죠.

사진: Sry85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사진: Joe Mabel on Flickr as Joe Mabel from Seattle, U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사진: Daniel Marchan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왜 미국보다 일본에 먼저 3개의 매장을 열었을까?
슈프림의 매장 확장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통 미국 브랜드가 성장하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같은 자국 대도시로 먼저 뻗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슈프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 오픈 연도 | 매장 위치 | 국가 |
|---|---|---|
| 1994년 | 뉴욕 라파예트 스트리트 | 미국 |
| 1998년 | 도쿄 다이칸야마 | 일본 |
| 1998년 | 오사카 미나미호리에 | 일본 |
| 1998년 | 후쿠오카 텐진 | 일본 |
| 2004년 | 로스앤젤레스 페어팩스 | 미국 |
| 2006년 | 도쿄 하라주쿠 | 일본 |
1994년 뉴욕 본점을 연 지 4년 만인 1998년, 슈프림은 미국 본토의 다른 도시가 아니라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오사카, 후쿠오카에 연달아 3개 매장을 열었습니다. 미국 2호점인 LA 페어팩스 매장이 2004년에야 열렸으니, 무려 10년 가까이 슈프림 매장은 미국에 1개, 일본에 3~4개가 존재하는 기현상이 이어진 셈입니다.
제임스 제비아는 왜 이렇게 일본 시장에 과감하게 베팅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1990년대 초반부터 스투시와 유니언을 통해 끈끈한 신뢰를 쌓아온 일본 스트리트웨어의 거장,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파트너 켄 오무라(Ken Omura, 원그램 대표)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서브컬처를 단순히 입는 옷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옷의 원단, 스티치, 담긴 음악적 배경까지 학구적으로 파고들며 진심으로 존중했죠. 그들의 눈빛을 보고 일본 시장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 제임스 제비아 인터뷰 중 발췌

사진: Syced / CC0 / Wikimedia Commons
후지와라 히로시와 우라하라가 전해준 ‘드롭’의 비밀
1990년대 도쿄 하라주쿠의 좁은 뒷골목, 이른바 ‘우라하라(裏原宿)’에서는 세계 패션 지형을 바꿀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굿이너프(Goodenough), 니고(Nigo)의 어 베이싱 에이프(A Bathing Ape), 준 다카하시의 언더커버(Undercover)가 탄생한 곳이죠.
우라하라 디자이너들은 돈이 없어서 옷을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량 생산과 백화점 유통이 브랜드의 신비감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티셔츠를 수십 장, 많아야 수백 장 단위로만 제작했고, 재고가 떨어져도 절대 추가 생산(리스톡)을 하지 않았습니다. 잡지 《타카라지마》나 《스마트》의 작은 칼럼에 신제품 소식을 짤막하게 공개하면, 주말 아침 골목길에 수백 명의 소년들이 줄을 서서 제품을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죠.
제임스 제비아는 도쿄를 오가며 이 우라하라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뉴욕 라파예트에 고스란히 이식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글로벌 패션계의 표준이 된 ‘드롭(Drop)’ 시스템입니다.
슈프림은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처럼 한 시즌의 모든 옷을 한 번에 매장에 깔지 않았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일본은 토요일), 정해진 시간에만 아주 적은 수량의 신제품을 매장에 풀었습니다. 품절된 옷은 다시 생산하지 않았죠. 이로 인해 손님들은 매주 매장을 방문해야만 했고, 매장 앞에는 자연스럽게 긴 줄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라하라의 ‘희소성 통제 비즈니스’가 뉴욕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결합하여 전례 없는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사진: Vast Ozone Studio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하라주쿠 매장과 아시아 스트리트의 진원지
2006년, 슈프림은 도쿄 하라주쿠의 핵심 골목에 또 하나의 매장을 오픈합니다. 이 매장의 위치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타키자와 신스케가 이끄는 네이버후드(Neighborhood) 매장 바로 윗층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반항적인 스케이트 브랜드와 도쿄 모터사이클/밀리터리 스트리트의 정수가 한 건물에서 공존하게 된 것이죠.
다이칸야마와 하라주쿠의 슈프림 매장은 금세 아시아 전역의 서브컬처 팬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홍콩, 대만, 한국의 스트리트웨어 애호가들은 도쿄 매장 앞에서 밤을 새워 번호표를 받았고, 영화배우 쿠보즈카 요스케(Yosuke Kubozuka) 같은 당대 최고의 서브컬처 아이콘들이 슈프림을 입은 모습이 잡지에 실리며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제임스 제비아는 단순히 미국 옷을 일본에 가져다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품 룩북을 만들 때도 일본 특유의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도쿄 편집숍의 큐레이션 역량을 전폭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우라하라 크루들이 뉴욕 스케이터들의 거친 정체성을 현대적인 ‘수집품(Collectible)’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준 것입니다.
뉴욕의 반항과 도쿄의 큐레이션이 빚어낸 성공
오늘날 슈프림은 루이 비통, 티파니, 노스페이스 등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시가총액 수조 원에 달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공의 밑바탕에는 뉴욕과 도쿄라는 두 도시의 절묘한 문화적 공생이 있었습니다.
뉴욕이 슈프림에게 타협하지 않는 길거리의 애티튜드, 스케이터들의 날것 그대로의 반항심, 그리고 힙합과 그런지라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면, 도쿄의 우라하라는 그것을 알아보고 가공할 줄 아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물했습니다. 수량을 통제하여 갈증을 유발하는 지혜, 하위문화를 예술과 아카이브의 반열로 승화시키는 세심한 장인정신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거리의 멋을 지키면서도 상업적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낸 비결. 뉴욕의 감성과 도쿄의 시스템이 만났을 때 비로소 21세기 가장 강력한 스트리트 브랜드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Glenn O’Brien, “James Jebbia is Supreme”, 『Interview Magazine』, 2009년 인터뷰 자료.
- Supreme New York, 『Supreme: Downtown New York Skate Culture 1994-2010』, Rizzoli, 2010.
- Takarajima Inc., 『LAST ORGY 2 & Asayan Archive Collection』, 1993~1998년 잡지 아카이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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