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Joy of Museum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900년대 옷을 해체한 디자이너의 고고학적 탐구
옷을 단순히 계절마다 바뀌는 유행으로 보지 않고, 먼 옛날의 유물처럼 대했던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T.T(구 Taiga Takahashi)’를 설립한 디자이너 타이가 타카하시(Taiga Takahashi, 1995~2022) 이야기입니다.
타카하시는 10대 시절부터 1900년대 초반에서 1930년대 사이에 제작된 아메리칸 빈티지 워크웨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시기는 미국이 규격화된 대량 생산 체제에 돌입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의 옷들은 저마다 독특한 원사 굵기, 장인의 손길이 닿은 바느질, 천연 염색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죠. 타카하시는 이 옷들을 단순한 수집품으로 모셔두지 않았습니다. 칼로 솔기를 뜯어내고 실을 풀어헤치며 옷의 내부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뜯어보았습니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한 뒤, 그는 자신을 디자이너라기보다 ‘고고학자’에 가깝다고 정의했습니다.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유행을 선도하기보다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내려가 잊힌 기술과 가치를 캐내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를 ‘응용 고고학(Applied Archaeology)’이라 불렀습니다.
실 한 올의 꼬임부터 천연 염색까지, 시간을 복원하는 방식
패션계에는 과거의 옷을 재현하는 ‘복각(Reproduction)’ 브랜드가 많습니다. 하지만 타이가 타카하시의 방식은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겉모습만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100년 전 의류가 지닌 물리적 법칙과 시간의 흔적 자체를 되살려내고자 했습니다.
| 복원 연구 항목 | 타이가 타카하시의 고고학적 접근 방식 |
|---|---|
| 원사 및 방직 | 1920년대 의류의 실을 풀어 꼬임 수(회전수)를 측정하고, 구형 셔틀 역직기로 고밀도 직조 |
| 염색 기법 | 화학 염료 대신 1,000년 전통의 교토 천연 식물 염색, 감즙(카키시부), 진흙 염색 활용 |
| 부자재 | 대량 생산 플라스틱 대신 녹이 스는 무도금 철제 버튼, 물소 뿔, 깎아 만든 목재 단추 사용 |
| 봉제 및 설계 | 100년 전 봉제선의 땀수와 장력을 측정해 당시 노동복 특유의 불균일한 입체감 구현 |
그는 실제로 1920년대 데님 재킷과 스웨트셔츠의 원사를 분해해 실의 회전수와 꼬임의 강도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원사를 짜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현재 거의 사라진 구형 셔틀 방직기를 수소문했습니다. 천천히 덜컹거리며 직조되는 구형 기계만이 당시 특유의 울퉁불퉁한 표면 질감(슬러브)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염색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화학 염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위해 수백 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 염색 장인들을 찾았습니다. 덜 익은 감에서 추출한 즙으로 햇빛을 쬐어가며 물들이는 감즙 염색, 진흙에 담가 색을 입히는 염색 방식을 옷에 적용했죠. 단추 하나를 달 때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산화되는 철제 부자재나 목재 단추를 고집했습니다. 그에게 옷이란 만들어진 순간 완성되는 물건이 아니라, 주인의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유기체였습니다.
뉴욕과 교토를 잇는 거점, 그리고 27세에 멈춘 시간
타이가 타카하시는 2017년 뉴욕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출범시킨 뒤, 2021년 12월 일본 교토의 역사적인 거리 기온(祇園)에 플래그십 스토어 ‘T.T’를 열었습니다. 100년이 넘은 일본 전통 목조 가옥(마치야)을 복원해 만든 이 공간은 단순한 옷가게가 아니었습니다.
매장 1층에는 타카하시가 수집한 수천 점의 아메리칸 빈티지 의류와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의복들이 전시되었고, 건물 안쪽에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돌과 흙으로 구성한 정원과 다실 ‘시카루미(然美)’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는 물질과 공간, 차 문화가 결합된 이 공간에서 ‘과거를 계승해 100년 후의 미래로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옷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과거의 유물을 되살림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한다.”
— 타이가 타카하시
그러나 그의 찬란한 탐구는 너무 일찍 멈추고 말았습니다. 교토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던 2022년 4월 9일, 타이가 타카하시는 향년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대 패션계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천재의 여정에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왜 현대 패션계는 그의 유작을 ‘시간을 초월한 옷’이라 부르는가
디자이너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브랜드 ‘T.T’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전 타카하시와 함께 작업했던 디자인 팀과 아카이브 연구팀, 그리고 일본의 장인들이 그의 뜻을 이어 브랜드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수천 점의 빈티지 아카이브와 꼼꼼한 연구 기록 노트는 여전히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귀중한 지도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타카하시가 세상을 떠난 후, 교토의 호소 갤러리(HOSOO GALLERY)와 도쿄 소게츠 회관 등에서 그의 유작과 수집품을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잇달아 열렸습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과 비평가들은 그의 옷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시간을 담아낸 조각품’으로 평가했습니다.
패스트 패션이 넘쳐나고 몇 달 만에 옷이 버려지는 오늘날, 100년 전의 실을 연구해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옷을 지으려 했던 타이가 타카하시. 2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가 증명해 보인 것은 옷이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시대를 건너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단단한 문화적 기억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T.T (Taiga Takahashi) Official Archive & Biography (taigatakahashi.com)
- HOSOO GALLERY, 《Texture from Textile Vol.2: Clothing of Time》 Exhibition Notes (Kyoto, 2023)
- Sogetsu Kaikan, 《Listening to the Voices of Relics, Garden of Applied Archaeology》 Exhibition Catalog (Tokyo, 2024)
- CASANOVA&CO, Official Commemorative Statement on Taiga Takahashi (2022)
- OK-RM & Taiga Takahashi, 《The Eternal Past: Applied Archaeology》 Project Monograph (London/Ky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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