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트 토이나 한정판 피규어 수집은 패션과 예술 애호가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취미가 되었습니다. 베어브릭이나 카우스(KAWS)의 컴패니언 피규어를 거실 한편에 오브제로 올려두는 일도 흔하죠.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장난감은 어디까지나 어린아이들의 완구이거나, 극소수 오타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상식을 뒤엎고 장난감에 거친 펑크 록의 반항심과 스트리트 패션의 감도를 불어넣은 브랜드가 바로 1995년 도쿄 하라주쿠에서 시작된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입니다. 브랜드의 수장 이와나가 히카루(Hikaru Iwanaga)는 세계 최초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직접 기획한 한정판 비닐 토이’를 선보이며 글로벌 아트 토이 씬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오늘은 하라주쿠의 펑크 키드였던 이와나가 히카루가 어떻게 빈티지 장난감을 스트리트 컬처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었는지, 그 유쾌하고 치열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세보 미군 기지 소년과 도쿄 섹스 피스톨즈
이와나가 히카루의 독특한 취향은 그의 유년 시절에서 싹텄습니다. 1968년 나가사키현 사세보에서 태어난 그는 미 해군 기지에서 근무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를 접했습니다. 당시 미군 PX를 통해 들어온 지아이조(G.I. Joe) 피규어, 캡틴 크런치 시리얼 패키지, 스타워즈 장난감 등은 어린 히카루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미국 빈티지 토이에 대한 그의 지독한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입니다.
성인이 되어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 진학한 그는 패션보다 음악과 펑크 록 문화에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훗날 언더커버(UNDERCOVER)를 설립한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입니다.
음악 취향과 옷에 대한 열정이 꼭 맞았던 두 사람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섹스 피스톨즈를 커버하는 카피 밴드 ‘도쿄 섹스 피스톨즈(Tokyo Sex Pistols)’를 결성했습니다. 준 다카하시가 조니 로튼 역할을 맡아 ‘조니오’라는 별명을 얻었고, 히카루 역시 무대 위에서 거친 에너지를 뿜어내며 하라주쿠 서브컬처 씬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이들이 보여준 반항적이고 자유분방한 펑크 정신은 훗날 바운티 헌터라는 브랜드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1995년 하라주쿠, 현상금 사냥꾼의 아지트가 열리다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뒤 도쿄의 유명 록 DJ 오누키 켄쇼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히카루는, 주변 동료들의 격려에 힘입어 1995년 하라주쿠 뒷골목에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 매장의 이름이 바로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였습니다. 평소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보바 펫(Boba Fett)’을 좋아했던 히카루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초기 바운티 헌터는 옷 가게라기보다는 히카루가 미국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수집해 온 빈티지 아메리칸 토이와 1970년대 펑크 밴드 티셔츠를 파는 편집숍에 가까웠습니다. 매장 진열장에는 그가 모은 빈티지 스타워즈 피규어와 빈티지 식료품 캐릭터 인형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거친 펑크 록이 흘러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인근에서 ‘노웨어(NOWHERE)’를 열고 우라하라 붐을 일으키던 준 다카하시와 니고(NIGO), 후지와라 히로시 등도 수시로 바운티 헌터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서브컬처에 목말라 있던 하라주쿠의 청년들에게 바운티 헌터는 단순한 옷가게를 넘어 취향을 공유하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 시기 | 주요 사건 | 의미 |
|---|---|---|
| 1980년대 후반 | 준 다카하시와 ‘도쿄 섹스 피스톨즈’ 결성 | 하라주쿠 펑크 서브컬처의 중심 인물로 부상 |
| 1995년 | 하라주쿠에 ‘바운티 헌터’ 매장 오픈 | 미국 빈티지 토이와 펑크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아지트 형성 |
| 1997년 | 첫 오리지널 피규어 ‘키드 헌터’ 출시 | 세계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소프트 비닐 피규어 탄생 |
| 1999년 | KAWS 최초의 ‘컴패니언’ 피규어 공동 기획·제작 | 글로벌 아트 토이 씬을 폭발시킨 역사적 협업 |

소프비 혁명: ‘키드 헌터’와 ‘스컬 쿤’의 탄생
매장을 운영하던 히카루는 점차 미국산 빈티지 완구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입체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1997년, 하라주쿠의 천재 그래픽 디자이너 스케이트씽(Skate Thing)과 손을 잡고 역사적인 첫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그 피규어가 바로 세일러복을 입은 반항적인 소년 캐릭터 ‘키드 헌터(Kid Hunter)’였습니다. 히카루는 일본 전통의 장난감 제조 방식인 소프트 비닐(소프비, Soft Vinyl) 공법을 사용해 이 캐릭터를 실물로 구현했습니다.
초기 키드 헌터는 바운티 헌터의 오리지널 티셔츠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소량 제공되거나 한정 판매되는 일종의 머천다이징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 펑크 감성이 묻어나는 장난꾸러기 조형은 패션 피플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출시 직후 매장 앞에는 피규어를 구하려는 인파가 길게 줄을 섰고, 준비된 물량은 순식간에 동이 났습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이와나가 히카루는 턱뼈가 도드라진 해골 모티프의 시그니처 캐릭터 ‘스컬 쿤(Skull Kun)’을 선보였습니다. 반항기 넘치는 해골 조형에 펑크 밴드의 에너지를 녹여낸 스컬 쿤은 바운티 헌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어른들이 열광하는 장난감’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단단하게 개척했습니다.
“장난감은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 우리가 입는 옷,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가 하나의 입체물로 표현된 결과물입니다.”

카우스(KAWS)를 3차원으로 소환한 서브컬처의 기린아
바운티 헌터가 일궈낸 소프트 비닐 토이의 성공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시선까지 끌어당겼습니다.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은 바로 뉴욕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카우스(KAWS)와의 만남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 자신만의 시그니처 ‘X’자 눈 캐릭터를 덧그리는 서브버타이징(Subvertising)으로 이름을 알리던 카우스는 일본 스트리트 씬과의 교류를 위해 도쿄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2차원 평면 작업 위주로 활동하던 카우스의 작업물을 눈여겨본 이와나가 히카루와 리얼매드 헥틱(realmad HECTIC) 팀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집니다. 바로 그 평면 캐릭터를 입체 장난감으로 제작해 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결과 1999년, 카우스 역사상 최초의 소프트 비닐 피규어인 ‘컴패니언(Companion)’이 바운티 헌터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단 500점 한정으로 제작된 이 첫 컴패니언 피규어는 하라주쿠 매장에서 발매되자마자 전량 매진되었고, 현재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아카이브 피스가 되었습니다. 히카루의 집요한 장난감 사랑이 훗날 전 세계 현대미술계를 뒤흔든 거장의 첫 발걸음을 직접 이끌어낸 셈입니다.
바운티 헌터는 카우스 외에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자비스(James Jarvis), 미국의 전설적인 록 포스터 아티스트 프랭크 코직(Frank Kozik) 등과 협업하며 전 세계 서브컬처 아티스트들의 그래픽을 피규어로 전환하는 산파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옷과 장난감의 경계를 지운 우라하라의 유산
바운티 헌터가 패션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머천다이징의 위상을 예술과 문화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 의류 브랜드가 장난감을 제작한다는 것은 단순한 판촉용 사은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나가 히카루는 티셔츠와 라이더 재킷, 그리고 소프비 토이를 대등한 가치를 지닌 ‘수집품(Collectible)’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한정판 드롭 방식과 수집 문화를 자극하는 패키징 디자인은 이후 메디콤 토이의 베어브릭 열풍, 나이키의 한정판 스니커즈 문화, 그리고 슈프림의 기상천외한 액세서리 라인업으로 이어지는 스트리트웨어 머천다이징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결성했던 펑크 밴드, 그리고 어릴 적 장난감이 좋아서 차렸던 하라주쿠의 작은 골목 가게. 타인의 기준 대신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쫓았던 펑크 키드 이와나가 히카루의 뚝심은, 오늘날 우리가 스트리트 컬처와 현대미술을 소비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Ivan Vartanian, Akio Iida, Lesley A. Martin, 『Full Vinyl: The Subversive Art of Designer Toys』, Collins Design, 2006.
- Sabukaru Online, 「A Toy Revolution: The Story of Hikaru Iwanaga and Bounty Hunter」, Archive Article, 2023.
- Toypunks Documentary Series, Vol. 1, Directed by Michael Colema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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