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너프(Goodenough)와 후지와라 히로시: 현대 스트리트웨어를 설계한 우라하라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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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펑크와 뉴욕의 힙합을 도쿄로 가져온 청년

오늘날 우리가 즐겨 입는 스트리트웨어의 규칙, 즉 한정 수량 발매와 밤샘 줄서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브랜드 간의 협업은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을까요? 그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우라하라의 대부’라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입니다.

미에현 이세시 출신의 후지와라 히로시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도쿄로 상경했습니다. 음악과 패션에 푹 빠져 있던 그는 1980년대 초 런던으로 건너가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이자 펑크 록의 산증인 말콤 맥라렌을 만났죠. 당시 맥라렌은 그에게 “지금 런던은 심심하니 뉴욕으로 가보라”고 조언했고, 후지와라는 곧장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막 태동하던 다운타운의 힙합 문화와 턴테이블 스크래칭을 직접 목격합니다. 도쿄로 돌아온 후지와라는 미국의 바이닐 레코드를 한가득 안고 클럽에서 디제잉을 선보였습니다. 다카기 칸과 함께 힙합 그룹 ‘타이니 펑크스(Tiny Panx)’를 결성했고, 서브컬처 잡지 《타카라지마(宝島)》에 ‘라스트 오지(Last Orgy)’라는 칼럼을 연재하며 서구의 최신 음악, 스케이트보드, 패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젊은이들은 도쿄의 유행을 알려면 무조건 후지와라 히로시의 칼럼을 읽어야 했습니다.

▲ 1990년대 도쿄 스트리트웨어의 설계자, 후지와라 히로시
▲ 1990년대 도쿄 스트리트웨어의 설계자, 후지와라 히로시

1990년, 이름을 숨긴 채 시작한 브랜드 ‘굿이너프’

1980년대 후반, 서프 및 스케이트 브랜드 ‘스투시(Stüssy)’의 창립자 숀 스투시와 교류하며 글로벌 크루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IST)’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후지와라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SK8THING(스케이트싱)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일본에서도 직접 입고 싶은 그래픽 티셔츠를 만들어보자는 뜻이 모인 것이죠.

그렇게 1990년,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 평가받는 굿이너프(GOODENOUGH)가 문을 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후지와라가 브랜드의 시작을 철저히 비밀로 부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옷의 라벨이나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잡지와 클럽 씬에서 엄청난 인플루언서였지만,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옷이 팔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내 이름에 기대지 않고, 옷과 디자인 자체만으로 사람들이 진짜 멋있다고 느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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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실린 타카하시 준(JONIO)과 니고(2GO)의 ‘Last Orgy 2’ 연재 지면

“다 팔릴 만큼만 만든다” 현대 스트리트웨어 문법의 탄생

굿이너프의 옷들은 도쿄 하라주쿠의 숨겨진 작은 편집숍들에만 소량 입고되었습니다. 정규 매장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정해진 발매 날짜를 대대적으로 광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독창적인 그래픽과 뛰어난 원단 퀄리티 덕분에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서 현대 패션계를 바꾼 결정적인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바로 ‘소량 생산 드롭(Drop)’입니다. 당시는 거대 의류 기업들이 대량 생산을 통해 백화점 매대를 채우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후지와라 히로시는 재고가 남아 옷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철저히 ‘남김없이 완판할 수 있는 수량’인 수십 장에서 수백 장 단위로만 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요가 공급을 압도했고, 굿이너프 옷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 밤을 새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정가보다 몇 배 높은 가격에 웃돈을 얹어 거래하는 2차 리셀 시장도 이때 싹텄습니다. 이후 후지와라 히로시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준 다카하시의 언더커버(UNDERCOVER), 니고의 베이프(A Bathing Ape) 같은 우라하라 브랜드들 역시 이 문법을 고스란히 계승했습니다. 굿이너프가 현대 스트리트웨어의 운영체제를 코딩한 셈입니다.

번개 로고와 프라그먼트 디자인, 협업의 시대

2000년대로 접어들며 스트리트웨어 씬이 상업적으로 거대해지자, 후지와라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꿉니다. 굿이너프의 운영 전면에서 물러나 2003년 디자인 연구소 성격의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을 설립한 것입니다. 조그마한 번개 두 개가 나란히 그려진 심플한 로고가 바로 이들의 상징입니다.

프라그먼트 디자인은 자체 공장을 두거나 거대한 시즌 컬렉션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기존 브랜드의 아카이브에 후지와라 히로시 특유의 미니멀한 감각을 덧입히는 파트너십 방식을 취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이키(Nike)와의 만남입니다. 2002년부터 후지와라 히로시, 나이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 그리고 CEO 마크 파커가 의기투합한 프로젝트 ‘HTM’은 오늘날 스니커즈 협업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프라그먼트 디자인은 루이 비통, 몽클레르, 태그호이어, 마세라티,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넘나들며 ‘협업의 미학’을 선보였습니다.

옷을 만들지 않는 디자이너, 쿨함을 편집하는 큐레이터

후지와라 히로시는 전통적인 의미의 재단사나 패턴 메이커는 아닙니다. 그 스스로도 복식 디자인을 정식으로 전공하지 않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죠. 하지만 그는 흩어져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탁월하게 조합하고, 무엇이 진짜 ‘쿨한 것’인지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을 지녔습니다. 음악의 샘플링 기법을 패션에 적용한 셈입니다.

“충분히 좋다(Good Enough)”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시작했던 작은 티셔츠 프로젝트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패션 산업의 기본 공식이 되었습니다. 대량 소비의 시대에 남다른 안목과 희소성의 가치를 증명해 낸 후지와라 히로시. 그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트리트웨어의 설계자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1.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제8장: 하라주쿠 스트리트웨어의 탄생과 굿이너프 비화)
  2. Hiroshi Fujiwara, 『Hiroshi Fujiwara: Fragment』, Rizzoli New York, 2014.
  3. Hypebeast Archive, “How GOODENOUGH Made Hiroshi Fujiwara the ‘Godfather of Streetwear’”, 2016.
  4. 《宝島(Takarajima)》 매거진 공식 아카이브, 후지와라 히로시 & 다카기 칸 ‘Last Orgy’ 연재본 (1987-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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