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프(A Bathing Ape / BAPE) 역사와 아카이브: 퍼렐과 칸예가 반한 도쿄의 유인원

작성자

카테고리:

4평 남짓한 도쿄 골목길에서 시작된 신화

1993년 4월, 도쿄 하라주쿠의 한적한 뒷골목(우라하라주쿠)에 작은 옷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노웨어(NOWHERE)’. 훗날 언더커버의 수장이 되는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와 문화복장학원 동기였던 니고(NIGO, 본명 나가오 토모아키)가 함께 차린 약 4평(약 13㎡) 남짓한 아담한 공간이었죠.

매장 한쪽에서 빈티지 아메리카나 의류와 수입 스니커즈를 판매하던 니고는 곧 자신의 레이블을 구상하게 됩니다. 바로 영화 《혹성탈출(1968)》 마라톤 시청과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하는 원숭이’라는 일본 속담에서 영감을 얻은 브랜드, ‘어 베이싱 에이프(A Bathing Ape, 이하 BAPE)’의 시작이었습니다.

니고는 대량생산 대신 일주일에 티셔츠를 50장 남짓 인쇄해 절반은 하라주쿠의 멋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소량만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돈을 쥐고도 살 수 없는 이 신비주의 전략은 도쿄 스트리트 신의 폭발적인 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도쿄 골목길의 유인원이 태평양 건너 미국 힙합 씬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스케이트싱과 맨키: 유인원 헤드와 카모플라주의 탄생

BAPE의 상징적인 시각 언어를 완성한 인물은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스케이트싱(Sk8thing, 본명 나카무라 신이치로)과 디자이너 맨키(Mankey)였습니다.

스케이트싱은 1968년작 《혹성탈출》 속 침팬지 얼굴을 담백하면서도 그래픽적인 2도 실크스크린 로고인 ‘유인원 헤드(Ape Head)’로 정제해 냈습니다. 티셔츠 앞면이나 소매에 간결하게 박힌 이 로고는 멀리서 봐도 단번에 BAPE임을 알 수 있는 강력한 식별 기호가 되었죠.

여기에 1996년 맨키의 손을 거쳐 탄생한 ‘1st 카모(1st CAMO)’와 ‘클라우드 카모’는 군복의 위장 무늬를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카모플라주 곡선 사이에 슬며시 유인원 얼굴이 숨어 있는 이 독창적인 패턴은 군용 위장이라는 본래 목적과 정반대로 ‘군중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려한 유니폼’이 되었습니다. 훗날 핑크, 퍼플 등 네온 컬러로 확장된 ‘컬러 카모(Color Camo)’는 2000년대 스트리트웨어를 정의하는 가장 상징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습니다.

▲ 전 세계 스트리트웨어 신을 뒤흔든 A Bathing Ape(BAPE)의 상징적인 스토어 아카이브
▲ 전 세계 스트리트웨어 신을 뒤흔든 A Bathing Ape(BAPE)의 상징적인 스토어 아카이브

보석상 제이콥의 중매: 퍼렐 윌리엄스와 니고의 운명적 만남

도쿄의 국지적 현상이었던 BAPE가 글로벌 문화의 중심으로 도약한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반 이루어진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이어준 인물은 뉴욕 힙합 다이아몬드의 전설, ‘제이콥 앤 코(Jacob & Co)’의 보석상 제이콥 아라보(Jacob Arabo)였습니다.

니고는 당시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제이콥의 공방을 찾아가 퍼렐이 맞춘 화려한 커스텀 주얼리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보석을 주문하곤 했습니다. 두 사람의 남다른 미적 감각과 공통점을 알아챈 제이콥 아라보는 퍼렐에게 “너와 똑같은 취향을 가진 대단한 일본 친구가 있다”며 니고를 소개했습니다.

구분 주요 인물 및 브랜드 역사적 영향 및 결과
연결고리 제이콥 아라보 (Jacob & Co) 뉴욕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매개로 퍼렐과 니고를 주선
파트너십 퍼렐 윌리엄스 & 니고 2003년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BBC)’ 및 ‘아이스크림’ 공동 설립
문화적 파급 BAPE의 미국 힙합 씬 정복 배기팬츠 중심이던 힙합 스타일에 화려한 재패니즈 스트리트웨어 이식

첫 만남부터 아메리칸 빈티지, 장난감 수집, 스니커즈에 대한 깊은 애호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즉시 형제 같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퍼렐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와 공식 석상에서 온몸을 BAPE의 카모 후디와 트러커 캡으로 휘감고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Billionaire Boys Club)’과 ‘아이스크림(Ice Cream)’을 론칭하며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 2006년 무대에서 아이스크림(Ice Cream) 티셔츠와 붉은 모자를 착용한 퍼렐 윌리엄스
▲ 2006년 무대에서 아이스크림(Ice Cream) 티셔츠와 붉은 모자를 착용한 퍼렐 윌리엄스

칸예예 웨스트와 베이프스타(Bapesta): 서브컬처가 힙합의 유니폼이 되다

퍼렐이 불씨를 지폈다면, 폭발적인 화력을 더한 인물은 칸예 웨스트(Kanye West)였습니다. 당시 데뷔 앨범 《The College Dropout》(2004)으로 힙합 씬의 새로운 천재로 떠오른 칸예는 에어 포스 1을 위트 있게 패러디한 반짝이는 에나멜 스니커즈, ‘베이프스타(Bapesta)’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2007년 1월, 마침내 기념비적인 협업 스니커즈 ‘칸예 웨스트 베이프스타(Kanye West x Bapesta “College Dropout”)’가 출시되었습니다. 갈색과 베이지색 가죽 어퍼 위에 칸예의 상징인 ‘드롭아웃 베어(Dropout Bear)’ 마스코트가 새겨진 이 신발은 칸예가 이후 전개할 독자적 신발 역사의 첫 발자국이자, 오늘날 스니커 아카이브 시장에서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전설적인 마스터피스가 되었습니다.

릴 웨인(Lil Wayne), 솔자 보이(Soulja Boy), 클립스(Clipse) 등 당대 최고의 래퍼들이 경쟁하듯 머리끝까지 지퍼를 올리는 ‘샤크 후디(Shark Hoodie)’와 형광빛 베이프스타를 착용했습니다. 헐렁한 미식축구 저지와 오버사이즈 청바지가 전부였던 미국 힙합 패션이 도쿄의 화려한 팝아트 그래픽을 자신들의 공식 제복으로 받아들인 순간이었습니다.

“BAPE는 단순한 의류 레이블이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해 현대 대중음악과 하이패션이 만나는 방식을 완전히 재정의한 시각 혁명이었습니다.”

▲ 2007년 베이프스타 협업 스니커즈를 선보이며 BAPE의 세계적 열풍을 가속화한 카니예 웨스트
▲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쥐고 공연을 펼치고 있는 칸예 웨스트

4평 골목 매장에서 글로벌 패션 하우스로

2000년대 중반 BAPE가 이뤄낸 미국 정복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패션계의 권력 지형을 바꿨습니다. 당시 도쿄의 아담한 매장에서 옷을 짓던 니고는 현재 LVMH 산하 겐조(Kenzo)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힙합 스타였던 퍼렐 윌리엄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올랐습니다.

제이콥의 보석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두 청년이 오늘날 세계 패션의 정점에 서 있는 셈입니다. 90년대 우라하라주쿠의 작은 옷가게에서 유인원 얼굴을 찍어내던 순수한 창작열은 그렇게 글로벌 패션 산업의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 W. David Marx, 『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 JOOPITER TV, 「NIGO, Pharrell, and Jacob: The Interview」 공식 대담 아카이브 (2023)
  • Hypebeast, 「Behind the HYPE: How BAPE CAMO Became an Everlasting Fixture in Streetwear」 (2023)
  • Highsnobiety, 「BAPE: Everything You Ever Wanted to Know」 (2023)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