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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웨어(NOWHERE)와 우라하라의 탄생: 니고와 준 다카하시가 1993년에 바꾼 스트리트 패션사

    노웨어(NOWHERE)와 우라하라의 탄생: 니고와 준 다카하시가 1993년에 바꾼 스트리트 패션사

    도쿄 뒷골목, 철망 하나로 나뉜 4평짜리 방

    1993년 4월 1일, 도쿄 하라주쿠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 작은 가게 하나가 조용히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에는 ‘NOWHERE(노웨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죠. 번화가도 아닌 외딴 골목, 매장 크기는 고작 4평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이 작은 공간을 함께 얻은 주인공은 도쿄 문화복장학원(분카패션칼리지) 동문이자 음악과 서브컬처에 푹 빠져 있던 20대 초반의 두 청년이었습니다. 훗날 ‘언더커버(UNDERCOVER)’로 파리 런웨이를 뒤흔든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 그리고 ‘베이프(A Bathing Ape)’와 ‘휴먼메이드’를 거쳐 프랑스 명품 하우스 겐조의 수장이 되는 니고(NIGO)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매장 안쪽 풍경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매장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밀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매장 한가운데에 철망 파티션 하나를 세워 공간을 딱 반으로 갈랐습니다.

    • 왼쪽(준 다카하시의 공간): 펑크 밴드 활동을 하던 그가 헌 옷을 직접 찢고 핀을 꽂아 실크스크린을 찍어낸 초기 ‘언더커버’ 커스텀 의류.
    • 오른쪽(니고의 공간): 미국에서 공수해 온 빈티지 스니커즈와 티셔츠, 그리고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스케이트싱(Sk8thing)과 의기투합해 갓 만들어낸 초기 ‘베이프(BAPE)’ 티셔츠.

    한 지붕 아래 전혀 다른 취향이 충돌하던 이 4평짜리 공간은 훗날 전 세계 패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거대한 서막이었습니다.

    “처음엔 거창한 사업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옷과 음악, 빈티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우리만의 아지트가 필요했을 뿐이었죠.”

    1993년의 NOWHERE 매장 외관
    ▲ NOWHERE 매장 외관
    1993년의 니고와 준 다카하시
    ▲ 1993년의 니고와 준 다카하시
    하라주쿠 골목길의 니고와 준 다카하시
    ▲ 하라주쿠 골목길의 니고와 준 다카하시

    스승 후지와라 히로시와 전설의 칼럼 ‘라스트 오지’

    아무리 감각이 뛰어난 청년들이라 해도 외딴 골목의 작은 가게가 저절로 유명해질 수는 없었겠죠. 이들의 등 뒤에는 든든한 멘토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라하라의 대부’라 불리던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였습니다.

    니고(NIGO)라는 이름 자체가 후지와라 히로시를 쏙 빼닮았다고 해서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2호, 藤原ヒロシ2号)에서 유래했을 만큼 두 사람은 돈독한 사제 관계였습니다. 후지와라는 잡지 《타카라지마(宝島)》에서 스트리트 컬처 칼럼 ‘라스트 오지(Last Orgy)’를 연재하며 도쿄 유스 컬처를 쥐락펴락하던 인물이었는데요. 그는 이 재능 넘치는 두 후배에게 자신의 지면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칼럼이 전설적인 ‘라스트 오지 2(Last Orgy 2)’입니다.

    인터넷도 SNS도 없던 시절, 패션에 민감한 도쿄 청년들은 매달 잡지가 발행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준 다카하시와 니고가 칼럼에서 “이번 주에 우리가 입은 옷”, “우리가 자주 듣는 앨범”을 소개하면, 다음 날 NOWHERE 앞에는 잡지를 손에 쥔 젊은이들이 긴 줄을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인스타그램 피드와 인플루언서 큐레이션의 원형이 이미 90년대 초반 종이 잡지와 뒷골목 매장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90년대 초반의 후지와라 히로시
    ▲ 90년대 초반의 후지와라 히로시

    돈이 없어서 만든 ‘한정판(Drop)’이 전설이 되다

    지금은 나이키나 슈프림,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에서 흔히 쓰는 ‘한정 수량 드롭(Drop)’ 판매 방식. 놀랍게도 이 문화의 출발점은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청년 창업가들의 극심한 자금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갓 스물을 넘긴 두 청년에게는 공장에 대량 발주를 넣을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티셔츠를 기껏해야 한 번에 30장에서 50장 정도만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낼 수 있었죠. 티셔츠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칙이 생겼습니다.

    • 입소문과 희소성: 발매 당일 오전에 오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는 옷.
    • 커뮤니티의 형성: 옷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골목에 텐트를 치고 줄을 서며 친구가 되는 유대감.
    • 골목길의 비밀주의: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숨겨진 위치(Ura-Harajuku, 뒷 하라주쿠).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없어서 조금밖에 못 만들던 사정”은 청소년들에게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성배’로 둔갑했습니다. 소량 생산과 품절, 프리미엄 리셀로 이어지는 현대 스트리트웨어 특유의 구매 공식이 바로 이 작은 골목길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NOWHERE의 시작과 현재

    구분 1993년의 NOWHERE 현대 글로벌 패션 시장
    공간/규모 하라주쿠 뒷골목 4평 남짓한 작은 방 전 세계 플래그십 스토어 및 하이엔드 백화점
    제작 방식 자본 부족으로 인한 30~50장 소량 수작업 나이키, 슈프림 등의 공식 ‘한정판 드롭(Drop)’ 시스템
    홍보 수단 월간 잡지 칼럼 (Last Orgy 2) 글로벌 SNS 캠페인 및 인플루언서 마케팅
    주요 인물 준 다카하시, 니고, 후지와라 히로시 파리 런웨이 디자이너, LVMH 겐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4평짜리 방에서 시작해 루이비통과 겐조의 정상으로

    골목길의 작은 반란으로 치부되던 우라하라 신은 점차 도쿄를 넘어 전 세계 서브컬처 팬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막 문을 연 슈프림(Supreme)의 제임스 제비아를 비롯해 전 세계 패션 키드들이 도쿄 뒷골목을 찾아와 이들의 옷을 사 모았죠.

    세월이 흘러 준 다카하시는 꼼데가르송 레이 가와쿠보의 지지를 받으며 파리 패션위크에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독보적인 예술성을 인정받는 하이패션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습니다. 니고는 퍼렐 윌리엄스와 손잡고 미국 힙합 신을 물들였으며, 고인이 된 버질 아블로와 함께 루이비통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데 이어 2021년 LVMH 산하 겐조(KENZO)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지갑이 얇았던 두 청년이 헌 옷을 자르고 빈티지 신발을 모아 철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팔던 1993년의 4평짜리 매장. 그들이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서브컬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럭셔리 패션 산업의 기본 문법을 지배하는 거대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및 아카이브 출처 (References)

    • W. 데이비드 막스(W. David Marx), 『아메토라(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 Basic Books, 2015. (제8장: 우라하라 운동과 스트리트웨어의 탄생)
    • 타카라지마(宝島, Takarajima Magazine), 1992~1994년 연재 칼럼 『Last Orgy 2』 (후지와라 히로시, 준 다카하시, 니고 공저 지면 아카이브)
    • Cutie Magazine (宝島社), 1990년대 초반 후지와라 히로시 스타일 아카이브
    • Yokogao Magazine & Sabukaru Online, “NOWHERE: The Epicenter of Ura-Harajuku” 역사적 사진 및 문헌 기록
    • Design Museum London, “Rebel: 30 Years of London Fashion / Ura-Harajuku Cultural Hub” 아카이브 연구 자료
    • UNDERCOVER & A Bathing Ape 공식 아카이브 및 20주년 회고 인터뷰 자료